시민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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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춘우군의 죽음은 너무 충격적이다. 쾌활한 어린이를 그처럼 생매장 할 수 있는 잔인성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진주는 인구 불과 10만정도의 단아한 고도이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서로 낯설지 않으며 먼 빛으로 목례라도 나눈다. 범인들이 춘우군을 살해한 것도 바로 그 범의의 은폐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은 물건도 아니고 사람을 어떻게 숨겨둘 수 있었겠는가. 지금 그런 얘기를 할 계제는 아니다.
춘우군은 유괴를 당해 남강으로 가는 합승 속에서 발버둥을 치고 반항을 했다. 고함도 질렀을 것이다. 엉엉 울기도 했을 것이다. 합승 속이 떠들썩했을 것은 틀림없다. 한 아이가 그처럼 발악을 하는데 운전사는 그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리는 없다.
시민정신! 범행 19일이 지나도록 진주 경찰서에 한 건의 그런 신고나 고발도 없었던 것은 통탄할 일이다. 결국 시민의 무관심, 무성의도 공범이라면 공범이다. 이성 있는 한 사람의 목격자만이라도 신고를 했었던들 수사는 뜻밖에 진일보했을 수도 있다. 『경찰서는 혐의없는 사람은 도무지 갈 필요가 없다』는 배타적인 인상이 그런 시민의 용기와 의협심을 가로 막았을지도 모른다.
유괴사건은 부자와 빈자사이에 일어나는 것이 흔한 공식이다. 진주는 서부경남에서 교통·산업의 중심지이다. 그런 번화 속에서 신흥부자들이 속출한다. 부자에게 가장 귀중한 재산은 도덕감과 인정이다. 춘우군의 부친이 경영하는 회사의 직공이 바로 범인인 것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1930년대의 세계적인 경제 공황 때에 유괴사건이 가장 성행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그 때의 입법정신에 따라 유괴범은 지금도 엄격히 다룬다. 단순유괴는 25년형, 금품강요 유괴는 종신형, 혹은 사형.
그러나 법제보다 앞서는 것은 시민의 인간애 정신이다. 도덕감은 그 시대의 산물이다. 춘우군 유괴사건의 공범은 우리의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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