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마케팅 필요 없는 ‘예술품’…에르메스(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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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몇 십 초에 하나씩 팔린다는 실크 스카프의 주인공 에르메스(Hermes).

정작 에르메스는 가방이나 스카프 등, 제품이 얼마나 팔리는 지에는 큰 관심이 없다. 관심사는 오직 하나, 예술품 경지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기업이나 브랜드라는 말 대신 메종 에르메스(Maison Hermes)라 불리길 원하며, 공장이 아닌 한명 한명의 장인의 손을 거쳐 제품이 제작되는 아뜰리에만 있을 뿐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그 이유다.

에르메스의 신화는 지난 1837년 티어리 에르메스가 파리에 마구상을 열면서 시작됐다. 그는 당시 교통수단인 마차를 끄는 말에 필요한 용구·안장·장식품을 직접 손으로 제작했으며, 1867년 세계박람회에서 1등을 차지하며 제품의 섬세함과 튼튼함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티어리의 아들인 샤를 에밀이 가업을 이어받으면서 에르메스를 부티크 사업으로 확장시켰으며, 켈리 가방의 원형인 오뜨 아 크루아 가죽끈 가방을 선보였다.

에르메스의 이름은 샤를 에밀의 막내 아들인 에밀 모리스가 사업에 참여하면서 세계로 세계로 퍼져 나갔다. 북미를 여행하면서 여행용 가방의 잠재력을 확인한 그는 당시엔 유럽에 소개되지 않았던 지퍼도 들여와 에르메스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사업 발전에 박차를 가했다.

실크 스카프가 에르메스의 얼굴로 자리잡는 데에는 에밀 모리스의 사위인 로베르 뒤마의 공이 컸다. 로베르의 아들로 현재의 회장인 쟝 루이 뒤마는 실크·가죽·의복 부분을 재조직, 활성화하였으며, 시계·팔찌·자기류·은식기류·크리스털을 속속 내놓아 성장을 가속화 시켰다.

에르메스의 마케팅 비결은 특이하게도 ‘마케팅을 되도록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매출 대비 광고비나 총 마케팅 비용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회사보다 적은 편이다. 광고는 이미지 전달 수준에서 그치고 오히려 전시회를 여는 등의 문화 행사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 에르메스 코리아가 제정한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이나 한국영화 후원 등은 작은 예일 뿐이다.

에르메스는 메세나를 위하여 다른 기업처럼 별도의 재단을 두지 않고 본사 부서의 주요 부서로 메세나부를 두고 있을 정도다. 2000년 9월 오픈한 뉴욕 매디슨 애비뉴 매장의 4층 갤러리를 포함하여 브뤼셀·휴스턴·워싱턴DC·도쿄의 긴자 매장에도 갤러리를 갖추고 있으며, 이웃 일본에서는 19년째 에르메스 위크라는 뮤직 살롱을 매년 가을 개최하고 있다.

에르메스가 다른 브랜드에 비해 마케팅을 소홀히(?) 하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쟝 루이 뒤마 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에르메스 최초의 고객은 말(馬)입니다. 말들은 광고를 볼 줄도 모르고 세일이나 판촉 행사에 초대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들의 몸 위에 얹혀진 안장이, 그들을 재촉하는 채찍이, 발에 신겨진 말발굽이 얼마나 편안하고 부드러우며 몸을 보호해주는 지에 따라 행복하고 더 잘 달릴 수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경험에 의해 자신들의 등에 얹혀진 안장이 에르메스 제품인지 아닌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면 판단은 고객의 몫이라는, 자사 제품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국내에서도 폭발적인 매출 신장을 거듭하고 있는 에르메스의 한국 지사가 출범 한 지는 이제 만 5년여. 출범 초기에는 대도시 인구의 0.3% 정도를 재고객이라고 생각했으나 매출 규모는 급성장, 올 예상 매출액은 2백억을 훌쩍 넘었다.

에르메스 코리아의 전형선 사장은 “소비자들이 여러 명품 제품을 사용하다가 궁극적으로 발길이 머무르는 곳이 에르메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성장 잠재력은 무궁무진하죠.”라고 미래를 낙관한다. 1백65년 동안 세계의 왕족과 상류층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 온 에르메스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2002년이다.

출처: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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