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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젠 윤진숙 해수부 장관을 응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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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그녀의 젊은 시절, 세상은 여성에게 시집가서 내조나 잘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길을 갔다. 지방 여대를 나와 11년에 걸쳐 석·박사 학위를 받고, 십수 년간 대학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다 한참 뒤에야 연구원 자리를 잡았다. 그녀의 나이 57세. 일류 스펙도, 뛰어난 연구업적도, 남편도, 집도 없다. 소위 ‘주류’ 인생은 아니었다. 그런 그녀의 인생에 느닷없이 신데렐라나 캔디 같은 일이 일어났다. 대통령이 유리구두(해양수산부 장관)를 들고 와 “이게 네 구두”라며 신겨줬다. 모든 동화는 이 지점에서 ‘그 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그녀, 윤진숙의 동화는 계속된다. 그녀의 첫 무대는 환영무도회가 아닌 인사청문회였다. 거기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잊어버린 것을 잊어버렸다며 열없이 ‘크크~’ 웃었다. 그러자 모두 도끼눈을 뜨고 그녀를 다그쳤다. 실력도 없으면서 왜 유리구두 주인인 척했느냐고. 그래도 님은 아랑곳 않고 그녀를 성으로 데리고 갔다.

 진짜 동화라면 나는 이 대목에서 박수를 쳤을 거다. 비주류 인생의 성공 스토리는 많을수록 희망적인 사회이므로. 하나 그러기엔 착잡하다. 그녀의 능력에 대한 불신 때문만은 아니다. 대놓고 말하긴 뭣하지만, 가장 걱정스러운 건 대책 없이 ‘천진한’ 그녀의 화법과 처세다. 때론 모르는 것도 아는 척, 변명할 수 있는 것도 사과하며 겸손한 척, 아는 것도 신중한 척하는 트릭에 사람들은 더 안도하는데 그녀는 그저 돌직구다.

 정직했으니 칭찬받아야 한다고? 그건 동화 속 얘기다. 사바세계에선 진짜 실력보다 실력 있어 보이는 걸 더 쳐준다. 학벌·외모·집안 등을 따지는 건 그래서다. 위선이라고? 맞다. 하지만 ‘세속’에선 리더의 배경과 능란한 처세술을 조직의 경쟁력이라고 믿는다. 실력의 밑바닥을 드러내고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는 리더는 조직을 장악하는 것도, 외풍으로부터 조직을 방어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그러니 그녀에 대한 세간의 질타는 과한 면이 있지만, 걱정은 과한 게 아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해수부 장관이다. 그만 흔들어야 한다. 이 외풍에 신설부서 해수부까지 흔들리면 국익도 흔들린다. 돌이킬 수 없다면 일단 기꺼이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게 현명하다. 해수부엔 실력 있는 실무자들이 있다. 그들이 장관을 ‘이지메’하는 세상에 동참하지 않고 함께 힘을 모아 맞선다면 성취 못할 것도 없다. 그녀는 막 시작했으므로 기회가 있다. 우리는 아무 배경도 없는 캔디가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그녀가 캔디처럼 성공한다면, 나라에도 그보다 더 다행이 없다. 이 이야기가 ‘그 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맺기를 바란다.

글=양선희 논설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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