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빌며 바다 위 산책 … 낙지·소라·전복 거저 줍는 재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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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유채꽃 필 무렵이면 전남 진도 앞바다엔 작은 기적이 일어난다. 진도 동남쪽 갯마을 회동리와 이웃 섬 모도 사이의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져 섬과 섬을 잇는 2.8㎞여 너른 길이 생긴다. 바닷길이 열리는 건 3월에서 5월까지 봄 한철, 매달 사나흘, 하루에 한 시간여 정도다.

이 작은 기적에는 전설이 내려온다. 먼 옛날 회동마을에 호랑이가 나타나 주민들은 모두 모도로 피신하고 연로한 뽕할머니 혼자 마을에 남겨졌다. 가족이 보고 싶었던 뽕할머니가 용왕님께 빌고 또 빌자, 바닷길이 열렸다는 이야기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 현장. 바닷길을 걸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도 있다

바닷길이 가장 훤하게 열리는 4월이면 회동마을 사람들은 바람의 신(영등신)에게 한 해의 풍요를 비는 영등제와 함께 뽕할머니를 기리는 제사를 지냈다.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에 의해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마을 주민끼리 치르던 연례행사는 78년 성대한 축제로 거듭났다. 오는 25∼28일 진도 회동마을과 모도 일대에서 열리는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miraclesea.jindo.go.kr)’는 그렇게 탄생했다. 올해로 벌써 35회째다.

축제의 주인공 뽕할머니.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바닷길 걷기다. 바닷길은 개막일인 25일 오후 5시에 처음 열려 나흘간 매일 40분씩 더 늦게 열린다. 한 시간여 흥겨운 풍악에 맞춰 바닷길을 걷다 개펄에 드러난 조개·낙지·소라·전복 따위를 줍는 것도 묘미다. 하루 고작 한 시간 이 길을 걷기 위해 해마다 46만 명이 진도를 찾는다. 일본 NHK 방송 등 외신에 보도되면서 이역만리에서 찾아오는 외국인도 6만 명이 넘는다.

슬픔을 신명으로 승화시킨 뽕할머니 제례며 진도 씻김굿, 상여놀이의 일종인 ‘진도만가’, 상주를 위로하는 진도 전통 가무악극 ‘다시래기’도 축제 기간 공연된다. 뽕할머니의 가족 상봉을 재현한 영등살 놀이는 27일 1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장엄하게 펼쳐질 예정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지정된 진도아리랑과 강강술래를 비롯해 주민 200여 명이 참여하는 진도 북 퍼레이드, 남도들노래, 선상농악 뱃놀이 등 진도의 온갖 진귀한 흥에 취하고 배울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된다. 진도 토종견 진돗개 경주와 묘기, 홍주 체험과 칵테일쇼 등은 축제 기간 내내 진행된다. 061-544-0151.

나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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