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살얼음판서 손발 안 맞는 외교안보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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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2013년 봄을 휘감아버린 안보 소용돌이 속에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국면을 조심스레 모색하고 있다. 북한이 일단 대화를 거부함에 따라 북한과의 신경전이 장기 레이스에 돌입할 조짐이다.

 그러나 이런 전환기에 박근혜정부 대북·외교안보 라인이 엇박자를 내는 등 혼선과 팀워크에 허점을 드러내고 있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우선 지난 14일 북한이 보인 대화 거부 입장을 둘러싼 혼선이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를 통해 “대화 제의는 교활한 술책이며 철면피한 행위”라고 비난했지만 청와대와 통일부는 “거부라고 쉽게 단정 말라”고 언론에 주문했다. 그러다가 불과 7시간 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심야 브리핑을 통해 “북한의 대화 거부는 유감”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의 뜻에 따른 발표였다.

 새 정부 들어 첫 공식 대북 제의란 점에서 치밀한 대응이 필요했지만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봉조(전 통일부 차관) 극동대 교수는 “안보실장이 주도해 대통령의 뜻이 해당 부처에 분명하게 전달돼야 한다”며 컨트롤타워로서의 청와대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이라고 진단했다.

 외교안보수석이 직접 나선 것도 문제란 지적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조평통 대변인 언급에 청와대가 심야 입장발표까지 한 건 남북관계의 격에 맞지도 않고 정부가 조급해 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가 조평통 발표 직후 “성명·담화도 아닌 기자와의 문답 형식이라 공식입장이라 보기 어렵다”고 설명한 것과도 배치되는 대응이란 얘기다.

 앞서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는 과정에서도 혼선이 빚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화 쪽으로 결심을 굳혔는데 참모들은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11일 “북한은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는 성명을 내고도 기자들의 질문에 “회담 제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3시간 뒤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부 장관 성명이 대화하겠다는 뜻’이란 취지로 말했다. 류 장관이 대통령의 메시지를 잘못 전달했거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 와중에 정홍원 국무총리는 “북한과 대화하자고 하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말해 혼선을 부채질했다.

 대북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대북 대화를 제의하는 과정에서 소외된 듯한 인상을 준 것도 문제란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통일부도 문제지만 주무부처의 뜻이 무시되는 게 자주 노출되는 건 볼썽사납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군 장성 출신이 다수 포진된 외교안보 라인에 북한 전문가를 긴급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정부 출범 초반에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철통 안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위기 국면을 잘 넘기긴 했지만,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려면 이에 걸맞은 전문가 투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박사는 “외교안보 라인의 논의 과정에 남북대화 실무 경험이나 대북협상 전술에 밝은 학자나 관료 출신이 포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두르는 인상을 주지 말고 차분하게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홍관희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상당 기간 기싸움을 벌인 뒤 명분을 챙겨 대화에 나올 것이므로 치밀한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신뢰를 얻는 걸 서두르다가는 자칫 국민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경고다.

 특히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외교안보 라인의 논의 구조와 의사결정 틀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봉조 교수는 “청와대 서별관 회의를 부활하라”고 강조한다. 서별관 회의란 과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 대북 관련 주요 현안이 논의되던 회의체다. 청와대·국가정보원·총리실과 각 부처가 조율하고 협의한 뒤 결과를 대통령에게 피드백하는 시스템을 재가동하자는 주문이다.

 대북 메시지와 관련한 정부 내 혼선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15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정돈된 메시지를 내보내야 한다”고 지적을 했다고 한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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