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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에게 빚 지우는 게 '창조경제'입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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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노무현정부 때인 2005년 11월.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는 공동으로 특별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감세 논쟁 주요 논점 정리’. 당시는 큰 정부-작은 정부 논란이 뜨겁던 때다. 세금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결론은 ‘감세에 따른 소비·투자 효과가 불투명하다’였다. 노무현정부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큰 정부 기조를 계속 유지했다.

 3년 후인 2008년 11월. 이명박정부의 기획재정부(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합친 부서)도 비슷한 자료를 내놨다. ‘최근 감세와 재정 지출 관련 주요 이슈 정리’였다. 경기 진작을 위해서는 감세정책이 재정 지출보다 효과적이라는 게 결론이었다. 같은 부처에서 내놓은 보고서의 내용이 3년 만에 완전히 바뀌었다.

 물론 3년 사이에 정권이 교체됐다. 정책기조도 달랐다. 그래도 궁색했다. 과거 분석이 잘못됐다는 설명은 없었다. 당연히 징계 또는 질책받은 공무원도 없었다. 이들은 “위에서 시켰기 때문에…”라고 말을 흐렸지만 대단히 유능했다. 시류에 맞춰 보고서를 능수능란하게 요리하는 솜씨는 경이적이었다. 관료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는 ‘우리가 남이가’ 문화는 흔들림이 없었다.

 공무원 조직은 박근혜정부 들어 더 생기가 돌고 있다. 이들의 목초지는 창조경제다. 창조경제가 뭔가. 들려온 답은 이렇다. ‘창의성을 핵심 가치로 둔다. 과학기술과 ICT(정보통신기술)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이, 산업과 문화가 융합한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애매모호하다. 이런 추상성은 관료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갑자기 창조금융이 나오고, 창조교육, 창조복지까지 태어난다. 일 잘하는 공무원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경제 부총리, 청와대 경제수석, 공정거래위원장 등 정부의 주요 자리는 관료들이 휩쓸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올해 경제성장률을 원래 예상치보다 무려 0.7%포인트나 낮췄다. 보통 정부는 민간 연구소나 한국은행보다 성장률 전망치를 조금 높게 제시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박근혜정부는 달랐다. 경기가 고꾸라진다는 공포 분위기가 조성됐다. 12조원 이상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 건 그 직후다. 추경은 나랏빚인 국채를 발행해 대부분을 충당할 계획이다.

 나랏빚을 갚는 건 후손들의 몫이다.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더구나 빚을 내려면 먼저 돈 씀씀이부터 줄이는 게 정도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5년간 135조원이 들어가는 복지 공약에는 절대 손대지 않겠단다. 결국 공약을 위해 필요한 돈을 빚내서 마련하는 꼴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은 겁에 질려 빚의 무게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관료들의 유능한 일처리 솜씨가 빛을 발한 것이다. 이들을 임명한 인사권자는 흐뭇해할 것이다.

 이제 본질적인 질문이 남는다. 이 정부의 핵심 가치인 ‘창조경제’는 어디로 가는가. 이런 관료들이 과연 창의성에 관심을 둘까. 과학기술과 ICT의 융합을 위해 도전할까. 뒤죽박죽 앞뒤가 맞지 않는 길로 접어든 느낌이다.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