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북한 논쟁

대북 특사 파견, 어떻게 봐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북한이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대북 대화를 제의 했다. 이에 대해 “위기 상황일수록 최고 통치권자들 간에 오해를 줄여야 하는 만큼 대북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는 주장과 “특사 파견과 대화를 종용하는 건 북한 전략에 말리는 것”이란 반박이 엇갈린다. 두 갈래 목소리를 들어봤다.


특사 통해 대통령 대화의지 전해야

길정우
새누리당 국회의원
(서울 양천갑)

북한의 호전적 언행이 누그러지지 않는다. 여야 정치권도 한목소리로 북측에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 특사나 메신저를 보내 대화를 시작해 보자는 생각에 반대하는 이가 적지 않다. 북측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기’만 살려줄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선 마당에 새로운 대통령이 구상하는 남북관계의 밑그림을 조속히 북측에 전달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에게 생소한 인물이듯 북측도 박근혜 대통령을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로 보고 있다. 지난 수년간 남북한 간에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대화 채널이 없었다.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관계였다. 그래서 메신저든 특사든 북측과 접촉해 새 대통령의 철학을 설명하고 현 상황이 극한 대립과 충돌로 발전하지 않도록 제동을 걸자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한다”고 누차 얘기했다. 새 정부가 그리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서 대화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대화 없는 신뢰 쌓기는 가능치 않다는 걸 한국 정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위기 상황일수록 최고통치권자들 간에 오해를 줄여가야 한다. 그래야 오판을 막을 수 있다. 극한 상황을 억지할 수 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과 소련의 흐루쇼프 당서기 간에 오간 비밀교신이 300여 차례가 넘었다고 한다. 양측에서 네 명만이 간여했던 대화에 비밀이 지켜졌고 신뢰가 쌓였다. 남북한 모두에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들이 들어선 경우라면 더더욱 상호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언론을 통한 과장되고 자극적인 언어의 간접대화가 아니라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직접대화만이 이를 보장할 수 있다.

 특사나 메신저의 주된 역할은 협상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화 의지를 전달하고 진정성을 담아 추진할 신뢰 프로세스의 철학과 비전을 설명하면 된다. 아울러 지난 정부들에서 합의한 내용에 담긴 기본정신을 준수하고 현실에 맞춰 조정해 가며 충실히 이행할 것이란 대통령의 약속을 전하면 된다.

 상황이 위중할수록 국제사회는 남북한 간에 대화로 풀라고 주문하고 있다. 게다가 이젠 한반도 상황 관리를 한국이 적극 나서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라고 촉구하고 있다. 지난날과 얼마나 달라진 우리의 모습인가. 미국이 한국의 어깨너머로 북한과 직거래할까 전전긍긍했던 날들도 있었다.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충돌하는 가운데 당사자인 남북한이 한반도의 장래를 논의할 여지가 사라질까 걱정도 했다. 북한의 위협 탓에 미·중 간 정책공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처럼 국제사회도 남북 간 대화를 적극 지지하지만 그 기회는 쉽게 오질 않는다. 이제까지 북한의 선제적 행동에 대응자세로 일관하던 우리 정부의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 걸핏하면 북한의 의도 분석에 매몰돼 주도적 정책 추진에는 소홀했던 과거의 대북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결국 우리 일이다. 앞으로 닥쳐올 위기 때마다 해법을 찾는 작업도 이젠 우리 몫이다. 어떤 형태로든 남북 간에 대화를 시작해야 주변국들에 휘둘리지 않는다. 자존적인 한반도 상황 관리도 남북 대화에서 출발한다.

 대화 복원이 신뢰 회복의 첫 단계다. 대화 없이는 박 대통령이 말하는 ‘위기 조성 이후 타협과 지원이라는 남북관계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길정우 새누리당 국회의원 (서울 양천갑)

통일부란 정상적 대화 창구 활용해야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온갖 비난과 위협을 가하더니 급기야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북측 근로자 전원을 철수시킴으로써 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에 대해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북한의 태도를 비판하면서도 결국은 대북 특사를 즉각 파견하고 무조건 남북 대화에 착수하라고 연일 정부를 몰아세우고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대북 특사 파견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며 결코 적절한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첫째로 대북 특사 파견은 북한의 잘못된 정책과 행태에 대해 면죄부를 줌으로써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이 자행해 온 도발-대화-보상이라는 패턴을 반복하게 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에도 정상 조업했던 개성공단을 남한 내 일부 언론이 못된 말로 자신들의 체제 존엄을 훼손한다는 황당한 구실로 가동 중단한 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불법적·비법적 폭거다. 그럼에도 무조건 특사 파견과 대화를 종용하는 것은 북한의 전략에 그대로 말려드는 것이다. 이제는 북한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시비(是非)를 가리고 당근과 채찍을 적시에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둘째로 역대 정권에서 남북관계의 위기를 돌파하거나 새로운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특사를 파견한 적이 있다. 그러나 특사가 대화나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한 정상적인 메신저로 인식되기보다 과도한 기대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능력 있는 거간꾼 역할을 해 특사 파견의 의미가 근본적으로 변질됐다. 소위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아 거물급이거나 놀랄 만한 선물을 지참하지 않는 한 특사로서의 자격을 거부함으로써 특사 파견의 정치적 부담이 지나칠 정도로 커진 것도 사실이다. 북한이 원하는 만큼의 선물을 지참하는 특사는 그 순간부터 문제 해결의 당사자가 아니라 남북관계의 왜곡과 남용의 주범으로 전락하게 된다.

 셋째로 북한의 도발은 북한의 핵심 이익인 핵무기 보유 국가로서의 지위 확보와 이를 억제하려는 국제사회의 제재 노력을 희석·무실화하기 위한 성동격서(聲東擊西)식 전략의 일환이란 점이다. 따라서 개성공단 정상화 등 남북관계 개선 차원에서 특사를 파견할 경우 북한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지 않는 한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 설사 일부 개선이 이뤄지더라도 대북 특사 파견이라는 성급한 대증요법으로 인해 국제 공조가 약화되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보다 강력한 대안 마련에 중대한 차질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 한 유엔 기구나 사무총장이 특사로 나선다 해도 결국은 한반도 핵전쟁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 국민 모두가 인질화되고 말 것이다.

 남북 간 갈등이 해소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 정착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을 용인한 전제 위에서의 대화와 협력은 무의미하며 위험천만한 일이다. 북한의 전략목표가 핵무력의 지속적 강화라는 엄중한 주공 전선을 간과하고 북한이 임의로 조성한 제2, 제3의 전선에 국력을 소모하지 말아야 한다. 대북 억지력을 유지하면서 그들의 교활한 선전선동으로 국론이 분열되거나 남남갈등이 재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남북 대화는 통일부라는 정상적인 대화 창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