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물결 너머 푸른물결 … 곱구나 4월 가파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가파도는 4월이 가장 아름답다. 출렁이는 청보리밭 너머 푸른 바다, 그리고 산방산과 한라산. 가파도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광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가파도. 섬 한가득 보리밭이 펼쳐진 섬이다. 해발 20.5m로 우리나라 섬 중에서 가장 키가 작은 데다 언덕배기 하나 없이 평평해 가파도 청보리가 바람에 흔들릴 때면 섬 전체가 춤을 추는 듯하다. 봄은 형형색색의 꽃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싱그러운 신록에서도 오는 법이어서, 가파도 청보리가 푸르게 흔들리는 장면만큼 봄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도 드물다.

봄마다 가파도 청보리는 춤을 추지만 올봄 가파도 청보리의 춤은 예년의 춤사위와 사뭇 다르다. 해안도로부터 보리밭 두렁까지 섬 곳곳에 대못처럼 박혀 있던 전봇대가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섬 곳곳에 132개나 있던 전봇대는 지난 해 모두 철거됐다.

가파도에 서 있던 전신주 132기는 2011년 10월부터 차례대로 뽑혀나가 지난해 9월 모두 철거됐다. 전깃줄은 대신 땅속으로 들어갔다. 가파도에 처음 전기가 들어온 게 1977년이었으니까 45년 만에 전봇대가 싹 없어진 것이다. 서귀포시와 한국전력공사가 벌인 가파도 전신주 지중화(地中化) 사업은 공사 20개월 만에 자잘한 뒤처리만 남긴 상태다.

전봇대 뽑은 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되물을 수 있다. 하지만 가파도에서는 중요한 변화다. 전봇대 철거는 친환경 명품 섬으로 탈바꿈하려는 가파도의 첫걸음이다. 앞으로 가파도는 ‘탄소 제로(Carbon Free)’ 섬으로 거듭난다. 가파도 안에는 전기차나 전기오토바이만 달리고, 전기도 태양열과 풍력으로만 만들어 쓸 계획이다. 아직 남아있는 통신주 20여 기도 모두 뽑아낼 작정이다.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해치는 흉물스러운 모습을 걷어내는 일이어서 전봇대 뽑고 전선을 땅에 묻는 일에 15억원이 넘는 돈을 기꺼이 투자했다.

청보리밭 사이로 난 올레길을 걷는 올레꾼들.

2009년 4월에 가파도는 청보리축제를 처음 시작했고, 이듬해 4월에는 제주올레 10-1코스가 열렸다. 그리고 올 4월에는 전봇대 다 치우고서 첫 청보리축제를 연다. 올해 가파도 청보리축제는 내일(13일)부터 5월 5일까지 열린다. 가파도에는 4월마다 좋은 일이 찾아왔다.

4월의 가파도는 바닷바람이 불어오면 두 번 출렁인다. 섬을 둘러싼 검푸른 바다가 일렁이고, 섬을 덮은 연초록 청보리가 춤을 춘다. week&은 지난해 가파도 전봇대가 없어진 걸 알고서도 가파도에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 계절이 이제 막 시작됐다.

글=이석희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