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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그리드, 기대만큼 큰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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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정동
서울대 교수·산업공학

똑똑한 전력망 정도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가 최근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력망이 스마트해지면 전력계통을 지능적으로 관리해 공급 안정성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수요자에게 실시간으로 전력 사용량과 요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합리적인 전력소비를 유도해나갈 수 있다. 소비자들은 전기요금을 아끼게 되고, 국가적으로는 전력생산에 들어가는 투자비를 절감할 수 있으니 모두 좋은 일이다. 나아가 차세대 분산형 전력시스템 구축을 앞당겨 새로운 에너지 세상을 열어갈 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통신의 경계를 허무는, 이른바 융합형 산업을 탄생시키는 열쇠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 덕분인지 스마트 그리드 관련 기업들의 주가 동향도 심상치 않다.

 그러나 기대가 큰 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스마트 그리드라는 기술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새로운 혁신이 사회에서 채택돼 소기의 성과를 내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이 많아서다. 2000만 호에 달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스마트 그리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전력계통과 통신 부문에서 조 단위의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 이는 어떤 형태로든 전기요금을 올리는 요인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소비자 편익이 충분히 체감될 수 있을까. 혹은 스마트 그리드로 인한 비용 절감 효과가 요금 인상 요인을 상쇄하고도 남을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기술의 사회적 가치는 아직 검증되지 않고 있다.

 스마트 그리드가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상식에서 벗어난 현재의 전력가격 수준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처럼 원가도 회수하지 못하는 낮은 가격에서는 실시간으로 요금 정보를 전달해도 기업이나 가계가 이에 맞춰 수요를 조절할 유인이 크지 않다. 이런 상태라면 스마트 그리드와 연관된 그 어떤 비즈니스 모델도 성립할 수 없다.

 유·무형의 보완적 자산에 대한 투자도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스마트 그리드는 단순히 스마트 미터기만 설치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전력망 전체의 기본 인프라를 개선해야 하고, 가전제품 등에 스마트 기능이 부가돼야 한다. 스마트 그리드 기술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사회 전체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나아가 융합과 관련된 각종 법제도도 선제적으로 손을 보아야 한다. 이런 보완적 자산을 구비하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등은 아직 불확실한 상태다.

 스마트 그리드 기술은 분명 혁신적인 기술이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선도국가로서의 입지를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기술 분야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비즈니스 모델이 성립하는지가 불확실한 것도 사실이다.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기술적 개발 못지않게 이 혁신이 수용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여건을 갖추어나가는 침착한 준비 자세가 필요하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산업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