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코레일 가서 자폭하고 싶은 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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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코레일 이사회가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협약 해제를 결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서울시와 코레일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개발에 찬성해 온 서부이촌동 11개 지역 동의자 대책협의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국토부와 서울시·코레일 등에 “사업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고 주민에 대한 보상을 최우선 고려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당초 2010년에 보상과 이주를 완료한다는 시 홍보물을 믿고 대출을 받았는데 개발이 지연되면서 빚을 갚을 수 없게 됐다”며 “정신적·물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서부이촌동에서 32년간 살았다는 강윤길(63)씨는 “코레일에 가서 자폭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이대로 가면 용산 참사 같은 비극이 또 일어날 수 있다”고 흥분했다. 김희자(60)씨도 “몇 주 전 주민대표가 코레일 본부장과 면담할 때만 해도 개발하는 방향으로 대화가 오갔는데 이렇게 되니 황당하다”며 “동네는 이미 폐허가 됐고 대출받은 이들은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한우리에 따르면 이번 소송 규모는 2000억원대가 될 전망이다. 이주비 명복으로 빌린 가구당 4000만원가량의 은행대출금 이자와 상권 황폐화로 인한 상가 매출 감소, 개발 소식으로 상승한 공시지가에 따른 재산세 인상분 등으로 가구당 8000만~1억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한편 개발에 반대해 온 서부이촌동 생존권 사수연합은 이날 코레일 본사가 있는 서울 서부역에서 고시개발구역 지정 해제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개발이 이미 무산됐는데도 개발구역으로 묶여 있어 재산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며 “도시개발구역을 해제해 주민 재산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서울시청 앞에서 시와 코레일·드림허브 측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일단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이제원 시 도시계획국장은 “계획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하려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 유감”이라며 “주민 의견을 수렴해 피해 대책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들은 “주민 부채를 시에서 지원해 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유성운·강나현·조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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