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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양수의 세상탐사

명재상·명참모를 발굴할 때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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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줄곧 한 일(一)자로 입을 꾹 다물었다. 간간이 특유의 미소를 지었지만 수심과 상념에 찬 표정이었다. 대통령 취임 40일째인 5일 저녁 제57회 신문의 날 축하연 자리에서였다. 신문의 날에 역대 대통령이 참석하는 건 취임 첫해뿐이다. 특정 단체의 연례 행사에 대통령이 매년 짬을 내기 힘들어 김대중 정부 때부터 자리잡은 청와대 의전관례다.

 박 대통령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그의 얼굴에서 사라진 미소는 국민을 슬프게 한다. 이날 박 대통령은 축하 떡 케이크를 자른 뒤 언론에 미(未)공개된 ‘농담’ 하나를 남겼다. 떡 케이크가 딱딱해져 자신의 생각대로 잘라지지 않자 곁에 있던 이에게 “고기 몇 근 먹고 힘을 내야 될 모양”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신문의 날 행사 사진에 나온 박 대통령의 희미한 미소 뒤에는 그런 숨은 사연이 있다.

 박 대통령에게 뭔가 달라진 모습을 기대했던 언론인들은 이날 많이 실망한 눈치였다. 박 대통령이 답답한 상황을 일소할 속 시원한 한마디를 해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눈빛은 300여 명 참석자와 따로 놀았다. 야당 대표인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과도 별 덕담 없이 스치듯 지나쳤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야당·언론과의 허니문을 전혀 갖지 못했다. 거듭된 인사 파문에다 창조경제·복지확대 등을 둘러싼 혼선과 갈등, 북한의 잇따른 도발 위협 등으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유례없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이다. 박 대통령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워온 반대 진영조차 ‘뭔가 타개책이 필요하다’고 걱정한다.

 박 대통령이 지금 힘을 내는 데 필요한 것은 ‘고기 몇 근’이 아닐 것이다. 소통·융합의 기술을 발휘해 정권의 운명을 지켜낼 조력자들이다. 박 대통령이 신문의 날에 행한 300여 자의 축사 중 가슴을 파고 드는 메시지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박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이런 발언을 했으면 어땠을지 발칙한 상상을 해봤다. “언제든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언론인들이 부럽다” “생각 같아선 안 오고 싶었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등등이다. 미국 보수 세력의 극렬한 비난·음해에 대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소와 유머로 응수해온 게 떠올라서다.

 박 대통령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명(名)재상과 명참모의 발굴이다. 동서고금 역사에서 명재상과 명참모가 없는 현군(賢君), 명군(明君)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공명(제갈량) 없는 유비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중국의 4대 명군으로 꼽히는 당(唐) 태종은 고구려 침략이 참혹하게 실패하자 ‘위징(魏徵)’을 목놓아 불렀다. 통일신라의 기초를 닦은 선덕여왕에겐 ‘좌 춘추, 우 유신’이 있었다. 세종대왕의 곁에는 황희 정승이, 정조대왕의 곁에는 정약용 같은 실학파들이 포진했다. 건국 이후 역대 대통령의 공과(功過)를 떠나서 그들에게 제2인자 또는 복심(腹心)이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적인 정치현실을 잘 압축해 준다.

 지난해 대선 유세 기간 중 야당은 박 대통령에게 ‘수첩공주’라는 네이밍(naming)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자력으로 ‘선거의 여왕’이 되고 흐트러진 보수세력을 결집하면서 내공(內攻)과 경륜을 쌓아왔다. 이젠 박 대통령이 또 다른 성공 신화를 써야 할 때다. 그러려면 야당 대표 시절과 달리 ‘대통령 박근혜’를 위해 죽기살기로 뛰어줄 복룡(伏龍)들을 발탁하는 게 절실하다.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설명하기 위해 ‘아파트 층간 소음’을 거론하는 사태에까지 이른 데 대해 당·정·청 인사들은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대통령의 말씀’만 받아쓰려는 자세로는 곤란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꼭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바른 말과 쓴소리를 받아들일 용기를 과연 갖고 있느냐다. 예스맨이 아니라 ‘노(No)’라고 말할 사람을 발탁하려는 발상의 전환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거야말로 창조경제의 본질이 아닐까.

 실력과 소신을 갖춘 반대편 인사들을 삼고초려, 아니 십고초려(十顧草廬)라도 해서 ‘대한민국 최강팀’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다져야 할 때다. 술에 물을 탄 듯한 사람을 쓸 게 아니라 ‘토털(total) 사커’를 하듯 국정 현장에서 전방위로 뛰려는 인사들을 중용해야 한다. 명재상과 명참모를 만드는 건 결국 박 대통령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양수 중앙SUNDAY 편집국장 yas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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