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의 규칙은 무용지물에 불과 관객도 무대 속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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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호 06면

현대 무용계의 절대 고수가 온다. ‘모던 댄스의 살아있는 전설’ 윌리엄 포사이스(64)의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이다. 4월 10일부터 14일까지 성남아트센터에서 펼쳐지는 포사이스 컴퍼니의 최근작 ‘헤테로토피아’는 올 국내 무용공연 중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힌다.

현대무용의 전설 윌리엄 포사이스 첫 내한 공연

포사이스는 발레의 한계를 확장하는 혁신적인 안무로 고전 발레가 네오클래식을 거쳐 컨템포러리로 옮겨오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무용평론가 장인주씨는 그가 ‘전설’로 불리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베자르가 연극적 연출로 컨템포러리 발레에 기여했다면, 포사이스는 기술적인 면에서 발레 테크닉을 완전히 자기식의 테크닉으로 변형시켜 컨템포러리 발레의 발전을 이끌었다. 프랑크푸르트발레단에서는 토슈즈를 고수하면서도 움직임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구조주의를 완성했고, 2005년 개인무용단을 만들면서 굉장히 실험적인 컨템포러리 댄스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번 공연작 ‘헤테로토피아’도 그런 맥락에 있는 작품이다.”

미국인인 그는 1970년대 초 유럽 무대에 처음 등장해 76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상임안무가를 거쳐 84년부터 무려 20년간 프랑크푸르트발레단 예술감독을 지냈다. 작곡가 톰 빌렘스,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와 협업한 ‘The Loss of Small Detail(1991)’을 비롯, ‘Artifact(1984)’, ‘Impressing the Czar(1988)’, ‘Limb’s Theorem(1990)’, ‘Endless House(1999)’, ‘Kammer/Kammer(2000)’, ‘Decreation(2003)’ 등 수많은 작품을 창작했다. 뉴욕시티발레단, 영국 로열발레단, 파리오페라발레단 등 세계 유명발레단의 주요 레퍼토리도 그의 안무를 거쳤다.

2004년 프랑크푸르트발레단을 나온 후에는 철학·미술·건축·영상을 결합한 더욱 급진적인 실험에 들어갔다. 단 16명의 무용수로 세계 유수의 공연장과 미술관을 종횡무진하며 새로운 개념예술을 선보이고 있는 포사이스 컴퍼니의 최고 걸작이 바로 ‘헤테로토피아’(2006)다. 미셸 푸코의 논문 ‘다른 공간들’(1967)의 개념을 차용한 작품의 키워드는 ‘번역’. 우리가 어떤 대상을 만날 때 그 실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식과 편견으로 번역해서 인식한다는 것이다.

객석을 과감히 없앤 극장 공간에 설치 미술과 연극적 요소를 끌어들이고 무용의 모든 규칙을 해체한 이 공연은 자칫 관객을 ‘멘붕’ 상태로 인도하기 쉽지만, 그럼에도 모든 해석은 관객의 몫으로 주어진다. 책상으로 가득한 공간과 블랙박스, 둘로 나뉜 무대에서 관객들은 무용수들의 땀방울이 튈 정도로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저들의 낯선 행동을 관찰하며 포사이스가 던지는 질문을 받게 된다. 우리는 왜 움직이는가? 움직임을 어떻게 보는가? 공간은 움직임과 시선을 어떻게 맥락화하는가? 이 모든 현상은 어떤 언어적 과정을 거치는가?

장인주씨는 “객석에서 무대를 보는 데 익숙한 관객에게 혼란은 있을 것”이라며, “단순히 지켜보는 것을 떠나 작품에 참여하는 것을 즐겨야 한다. 작품 속으로 들어갈 것을 작정하고 봐야지,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면 계속 어색할 것”이라 말한다. 과연 우리가 가진 무용과 예술에 관한 편견들은 윌리엄 포사이스의 아방가르드한 실체를 어떻게 번역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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