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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 5만원짜리 설렁탕은 왜 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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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입맛의 추억 때문인지 분식집이 당길 때가 가끔 있다. 뒷골목에서 테이블 서너 개 놓고 아주머니 혼자 장사하는 그런 가게 말이다. 단순한 라면·김밥을 생각하고 들어갔다가 의외로 세분화된 메뉴에 놀라곤 한다. 김밥은 속 재료에 따라 다양하고, 라면도 달걀을 풀었는지 가래떡이나 콩나물을 넣었는지에 따라 가격대가 제각각이다. 하긴, 라면이라고 고급품이 없으란 법이 있나.

 재작년 라면업계를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던 ‘신라면 블랙’ 소동이 생각난다. 소비자가격(1600원)이 일반 라면의 두 배를 넘었다. 출시 첫 달 90억원어치나 팔았지만 소비자들의 호기심이 줄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장 광고를 했다며 과징금까지 물리자 넉 달 만에 생산을 접었다. ‘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을 담았다’는 광고 문구가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아쉽다. 이따금 ‘라면 사치’를 부려보고 싶은 사람이 지금도 적지 않을 터다.

 그럼 진짜 설렁탕 한 그릇은 얼마인가. 식당에 따라 대략 5000원에서 1만원 사이다. 한우 설렁탕, 유기농 설렁탕이라며 1만원 넘게 받는 곳도 있다. 도자기 전문기업 광주요의 조태권(65) 회장은 “설렁탕 한 그릇도 5000원에서 5만원까지 다양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5만원짜리는 비싼 고기를 쓰고 고급 반찬들을 딸리고 밥도 김포금쌀로 지어낸다. 그래야 단품 한식도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가치 경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조 회장은 고급 한식 상품화·세계화에 사재 600억원 이상을 털어 넣어 기인(奇人)이란 소리까지 들은 이다. 미국 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의 말을 그는 즐겨 인용한다. “저렴한 상품은 저렴한 사람(노동)을 의미하고, 저렴한 사람은 저렴한 국가를 의미한다. 그건 우리 아버지들이 세운 국가가 아니며, 그 아들들이 유지하고자 하는 국가가 아니다.”

 신라면 블랙 소동에서 엿보이듯이, 물가안정 같은 정책적 고려와 함께 ‘위화감’이라는 만능 요술방망이가 우리 사회에서는 강력한 잣대로 기능한다. 그러나 음식부터 패션·음악·영화 등 창의성이 관건인 분야까지 위화감 잣대를 들이대서야 곤란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가방·지갑이 화제에 오르더니 요새는 박 대통령이 달았던 브로치들이 시장에서 대박이다. 역시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이왕이면 대통령이 최고급·중저가 소품을 고루 사용해 다양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면 어떨지. 한복이 잘 어울리니 예를 들어 매달 첫 국무회의를 전 국무위원과 함께 한복 차림으로 진행하면 많은 국민이 장롱 속에 두었던 한복을 다시 꺼내 입지 않을까. 고급품이 등장해 위화감을 자아내면 시샘이 나서 같거나 더 나은 것들이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문화 분야만큼은 정부가 위화감을 한껏 부추겨 주면 좋겠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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