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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과 슬기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로마」교황 「바오로」6세는 지난 1월 소련 최고회의간부회 의장 「포드고르니」를 접견한 일이 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포드고르니」에게 담배를 권했다. 이 사실은 교회의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유물론자의 두목을 만난것도 파격이지만, 그에게 담배까지 권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존엄스러운 지위를 경멸하는 파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황청 기관지 「오세르바토레·로마나」지는 사설로써 그들을 꾸짖었다. 바로 10년전만해도 사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에 현대의 「가톨릭」은 관용을 보인다. 그만큼 교회는 역사를 앞지르고 있다.
완고한 보수주의자들은 시세에 따라 서서히 물러나고 교회의 운영은 보다 능력있고 박력에 엄친 젊은 성직자들에게 이양된다. 지난달엔 미국 「클리블랜드」교구에서 부주교를 직접 선거로 선출하는 것까지 교황청은 허용했다.
그와 같은 「무드」는 바로 공의회의 정신이기도 하다. 교황도 원로원격인 「사찰회의」를 설치해서 자신을 자문하는 기구를 공식화했다. 교회는 이른바 「봉건영주적인 지배형식」을 벗어나, 보다 개방적이며 민주적이며 「종다수」적인 방식에 적응해간다.
지난 24일 「로마」교황이 서울 대교구장인 노기남 대주교의 사표를 받아들인 것도 「교회의 새 풍토」를 위한 배려일 것이다. 노 대주교는 「대주교」의 영예와 존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경기도 안양의 성「나자로」 요양원에서 나병환자들의 영혼을 돌보며 여생을 보내리라고 한다. 세속적인 은퇴와 구별되는, 바로 그점은 종교답다. 실질적인 한국 천주교의 총통으로서 25년간이나 봉직해온 그가, 오늘은 나병환자속에서 그들의 영혼을 돌보는 자비(慈悲)로움.
새로 부임한 윤공희 주교는 석학의 성직자이기도 하지만, 보수와 혁신의 중화적 인물이라는 평을 교회안에서 받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급선무인 한국 교회의 재정적인 취약성, 그리고 정체적인 행정의 타성 등 그가 당면한 과제는 크디크다. 그러나 아직 이순도 못된 40대의 젊음은 그의 능력을 함축하고 있다. 노 대주교에게 건강과 은총을… 그리고 윤 주교에게 슬기와 용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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