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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귀순에 붙이는 두 언론인의 술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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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자유를 모르고 자유롭게 산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자유를 알고 부자유를 옆에 두고 사는 시대다. 모든 것이 사람에게서 나서 사람에게로 돌아간다고 볼 때 이 시대에 대한 잘못된 처리는 인류의 운명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것이고 또 비인도적 처벌만을 가해지게 할 것이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양식을 바로잡으려고 하고 있으며 또한 인간을 형제로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때까지 받아들인 사람 가운데 여기 중견의 한 지성인이 있다.
그는 바로 북괴중앙통신의 부사장의 고위 간부를 지냈던 이수근씨이다. 그는 공산주의에 항거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판문점을 뚫고 순식간에 조국의 흙을 밟았다.
그러나 그는 민주 정신의 단종을 강행하는 공산사회에 그의 사랑하는 처자를 버리고 온 사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실로 인간으로서 참기 어려운 희생을 무릅쓰고 사상 때문에 조국 때문에 월남한 것이다.
이제 이씨에게 바라는 나의 마음은 그가 목숨을 걸고 모든 것을 희생한 판문점에서의 자유 선택을 결코 헛되지 않게 할 것은 물론 여생을 통해 그를 더욱 빛내게 하여 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더욱이 나는 직업 언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당인으로서의 냄새가 보다 풍겨 보이는 이수근씨가 앞으로 우리네 자유 천지에 적응해 나가는데 있어 올바른 생활처세를 가져주기를 바란다.
그것은 흔히 공산주의자들의 눈에는 자유천지가 무규율과 혼란 그리고 부패의 대명사로만 투영되었다는 사실과 또한 인간이 가지는 큰 기대가 잘못되면 오히려 실망만을 가져다 주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수 없다는데서이다.
자유는 확실히 생명보다 귀중하며 또한 자유의 진가는 자유를 떼워봄으로써만 더욱 알 수 있게 된다는 8년전의 나 자신의 체험은 바로 이수근씨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믿어마지 않는다. ◇1959년 1월 귀순
말끝마다 김일성을 더 떠받들고 그 「말씀」을 인용하라고 야단이었다. 그까짓 김성주(김일성의 본명)가 무엇이기에… 어려서부터 중국 공산당의 뒷꽁무니나 따라다니다 소련군 등에 업혀 해방 북한에 들어와 모든 경쟁자들, 심지어 가장 친한 공산 동지들까지를 죽이고 독재자가 된 연청 선수단장이 아닌가!
그런데 그 피비린내 나는 폭군을 떠받드는데 가장 앞장서야 하는 한 사람이 바로 그… 이수근의 사명이었다. 죽기보다 괴롭고 서글펐다. 그럴수록 인간 이수근에게는 더욱 사람다운 인간성, 양심, 자유… 적어도「펜」대를 한 번만은 제마음 대로 돌려보고 싶은 자유가 목마르게 안타깝게 갈구되었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그런 눈치는 아무리 주의하느라고해도 이래저래 엿보이게 마련이다.
하물며 그런것만 엿보는 밤도둑 고양이 같은 공산 정치경찰의 「레이더」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죽느냐? 사느냐? 저기 남쪽 하늘 밑에서는 자유 대한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다행히 그곳으로 가는 문 판문점을 나가란다.
그는 달렸다. 판문점 회담 「유엔」측 대표단 승용차에로, 아니 자유에로! 조국 대한민국에로!
괴뢰병의 40여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것은 그 이수근의 공산 학정에서의 탈출, 인간으로의 해방을 구가하는 축포라고 보아도 좋다. 적어도 이것으로써 새로 시작되는 그의 양양한 앞날을 생각할 때 그렇다. ◇195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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