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학 진학률 높은 강남 3구 학업성취도 평가는 부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0면

숙명여고는 2012학년도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일반고 중 1위를 했다. 이 학교는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높고 수업 분위기가 좋아 강남 지역 학부모가 선호한다. 

지난해 전국 1735개 고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를 분석한 결과 46개 학교가 응시한 재학생 전원이 보통 학력 이상을 기록해 공동 1위를 기록했다. 이 학교들은 학업이 극히 부진한 학생이 한 명도 없다는 의미다. 과학고와 외국어고, 전국 단위 선발 자율고 등 대부분 학생 선발권을 가진 학교다. 지만 서울 특목고와 자율고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성과가 크지 않았다. 서울국제고와 한성·세종과학고 세 곳만 빼고는 모두 기초학력 이하 학생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원외고·하나고·대일외고·명덕외고 등 선호도 높은 소위 명문 학교도 학습 부진 학생 ‘제로화’는 이루지 못한 것이다. 강남 3구 고교 역시 중학교와 딴판으로 하위권에 머무른 학교가 많았다.

중앙일보가 교육업체 하늘교육과 함께 지난해 초·중·고 학업성취도 평가 전국 순위를 처음으로 매겨본 결과 강남 3구 초등학교는 전국 순위 500위에 드는 곳이 6곳뿐이었다. 사교육 1번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교가 많았다. 중학교는 달랐다. 강남 3구 중학교(63곳)의 절반에 가까운 29곳이 서울시 상위 50위에 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공부 잘하는 학생이 다른 지역에서 강남으로 들어오는 데다 초등 시절 받은 사교육의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중학교 때 높던 강남 지역 학업성취도 수준은 고교에서 다시 확연히 떨어진다. 전국 500위에 든 강남 3구 고교는 서초구 세화고(63위), 강남구 현대고(99위), 서초구 세화여고(165위), 송파구 보인고(206위), 강남구 중동고(217위)·숙명여고(360위)·휘문고(368위), 서초구 서문여고(464위) 등 8곳에 불과했다. 서울 상위 50개 고교를 꼽아봐도 강남 3구 학교는 10곳뿐이었다. 고교 1학년 자녀를 둔 이모(47·대치동)씨는 “중학교 성과에 비하면 고교의 학력 수준은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강남 3구, 초등학교 부진-중학교 약진-고등학교 뒷걸음질

교육에 열성인 강남 지역 고교의 학업성취도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은 학력 양극화가 심하다는 걸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강남 고교는 재수생·삼수생까지 합하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은 서울대·고려대·연세대(SKY대) 합격생을 배출한다. 상위권 학생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최상위권 학생층이 아무리 두터워도 공부 못하는 학생 비율이 높으면 순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상층만큼 학력이 부족한 강남 고교생도 많은 셈이다.

 강남 지역 중학교의 학업성취도는 높은데 고교에서 다시 낮아진 이유는 학교 선택권으로 설명할 수 있다. 거주지 학군에 따라 배정하는 초·중학교(국제중 제외)와 달리 고교는 선택해 갈 수 있는 곳이 많다. 상위권 학생은 특목고나 국제고, 또는 자율고로 많이 빠지기 때문에 강남에 남은 학생의 평균 학력 수준이 중학교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분석하는 전문가도 있다. 하늘교육 집계에 따르면 2011, 2012학년도에 강남구에서 과학고·영재고에 진학한 학생 수는 각각 45명, 63명이었다. 강남구 전체 중학교 졸업생의 0.6%, 0.9%다. 그나마 과학고·영재고는 강남구 출신 진학률이 가장 높다. 반면에 외국어고·국제고는 강남구 중학생의 진학률이 서울 전체 구 중 10위에 그쳤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강남에서만 특별히 최상위권 학생이 특목고로 빠져나가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선행학습이 고교 성적 보장 안해

 많은 전문가는 “대치동 등에서 기승을 부리는 선행학습이 중학교 성적까지는 높일 수 있지만 고교 학습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임 대표는 “고교 입학 때 수준을 보면 강남 고교생 절반은 서울지역 대학에 무난히 합격해야 하는데 막상 수학능력시험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다”며 “고교부터는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어려워 스스로 학습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남 학부모가 자녀에게 어려서부터 무리하게 선행학습을 시키지만 고교 과정까지 미리 진도만 뺀다고 그 내용을 이해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임 대표는 “초등학교 6학년이 고교 미적분까지 진도가 나갔다고 좋아만 해선 학년이 올라갈수록 낭패를 본다”며 “밤 10시까지 학원에 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심화학습 능력을 꼼꼼히 쌓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고교가 명문대 진학 실적만 중시하느라 학력이 뒤처지는 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못하는 학생을 찾아내 공교육에서 지원하자는 취지가 있는데, 대부분의 강남 고교에선 내신에 포함되지 않는 시험이라 특별한 대비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강남구의 한 고교 교사는 “학생이나 교사, 학부모 모두 학업성취도 평가에 신경쓰지 않는다”며 “학교장이 의지를 갖고 준비하는 지방 학교는 좋은 성적이 나오겠지만 강남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학업성취도 평가는 수능처럼 고난도 문제가 나오는 게 아니라서 선행학습 효과를 따질 수 있는지도 불투명하다”고 주장했다.

 SKY대나 의대 계열에 몇 명을 보냈느냐로 학교를 평가하는 분위기 탓에 강남 고교에서 뒤처지는 학생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은 부족한 실정이다. 이럴수록 성적 양극화는 심화한다. 응시생 전원이 학업성취도 보통학력 이상을 받은 충남 논산 연무고 최상률 교감은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이 사회에 나가 어떤 역할을 하겠느냐”며 “학생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교사들이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반고 중에는 여고 강세

 일반고에서는 여고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서울 상위 50개 고교 가운데 학생 선발권 없이 추첨 배정하는 일반고는 15곳이 포함됐다. 이 중 13곳이 여고였다. 노원구 영신여고·대진여고, 양천구 진명여고·목동고, 동대문구 경희여고, 강남구 숙명여고·은광여고·경기여고, 서초구 서문여고, 성북구 성신여고, 종로구 배화여고·상명대부속여고, 강서구 명덕여고 등이다.

 여학생이 상대적으로 내신 관리를 꼼꼼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남녀공학에 가면 남학생이 내신에서 손해를 보는 이유다. 학교 학업 분위기도 여고, 남고, 남녀공학 순으로 좋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 적도 있다. 학부모 교육 커뮤니티 디스쿨 김현정 대표는 “강남 학부모는 남녀공학을 싫어해서 자녀가 배정받았다고 우는 엄마도 봤다”며 “남학생은 여학생이 내신을 잘 챙기니 싫어하고, 여학생은 학교 분위기가 안 좋아 싫어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수능 최상위권에서는 남학생 우위가 나타난다. 최상위권은 남학생이, 평균적으로는 여학생이 강한 셈이다. 2012학년도 수능에서 언어·수리·외국어와 탐구 3개 영역 만점자 수는 남학생이 24명, 여학생이 6명이었다.

글=김성탁·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 학업성취도 평가

매년 한 차례 전국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치른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은 국어·영어·수학, 중학생은 위 세 과목에 과학·사회 두 과목을 더 본다. 성적은 성취도에 따라 ‘보통 학력이상’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 3단계로 나눈다. 보통 학력 이상은 국가가정한 교육과정 성취목표의 50% 이상을 달성한 수준이다. 성취도가 20~50%이면 기초학력, 20% 미만이면 기초학력 미달로 분류한다. 교육부가 운영하는 ‘학교알리미’ 사이트에 학교별로 이 비중이 공개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