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대선후보 사퇴한 날, 표현 못할 만큼 마음 아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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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호 04면

최정동 기자

‘안철수의 아내’ 김미경(50·사진) 서울대 의대 교수는 “남편(안철수 4·24 노원병 재·보선 예비후보)이 대선 후보를 사퇴하던 날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데 마음이 많이 아팠다”며 “노원에서 만나는 주민들이 ‘이번엔 절대 그만두지 말라’고 당부한다”고 말했다. 26일 서울 노원구 7호선 수락산역 근처 커피숍에서 한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다. 김 교수는 노원병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남편을 열흘째 돕고 있다. 평일엔 이틀에 한 번꼴로 지하철역에서 출근 인사를 하고, 주말엔 아침·낮 시간에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김 교수는 안 예비후보의 대선 출마 때도 고향인 전남 여수를 중심으로 한 달 반 동안 유세에 나섰었다.

‘안철수의 아내’ 김미경 서울대 의대 교수 인터뷰

김 교수가 신문 인터뷰에 응한 건 안 예비후보가 지난해 9월 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래 중앙SUNDAY가 처음이다. 그는 “남편이 교수가 될 줄 알고 결혼했는데 어느 날 사업을 하고 정치에 뛰어들더라”며 “남편이 내린 결정들이 나중에 지나고 보면 좋은 선택이라고 믿어왔기에 따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저도 이제 악수 잘 해요”라며 기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양손으로 손을 꽉 잡고 눈을 맞췄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 하는 악수 방식이다. 단발머리를 단정하게 다듬었고, 검은 니트 원피스 차림에 부츠를 신고 옅은 화장도 했다. 그는 “노원구 산악회 모임에 나갔더니 젊은 여자분이 ‘머리를 자르면 젊어보일 것’이라 해 어제 머리를 잘랐다”며 “또 어제 퇴근 인사 때 한 주민이 ‘화장을 좀 하라’고 해서 오늘은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노원으로 이사온 소감이 어떤가.
“주민들이 굉장히 따뜻하시다. ‘안철수 처입니다’고 인사하면 주민들이 손을 잡아주신다. 지난 토요일에는 저희 아파트 단지 주민 100명쯤이 모여서 환영회도 해주셨다. ‘드디어 정착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거용으로 이사온 게 아니라 정말 정착할 생각인가.
“그렇다. 여기 정착할 거다. 내가 산을 좋아하는데, 집에서 산이 굉장히 가깝다. 수락산 입구가 여러 개던데 다 다녀봐야 할 것 같다.”

-주민들 만나면 무슨 얘기를 주로 하나.
“많은 분이 ‘(안 예비후보가) 이번엔 그만두면 안 돼요’라고 한다. ‘끝까지 가야 합니다’ ‘힘내세요. 고생하십니다’ 같은 말씀도 많다. ‘절대로 여기저기 옮겨다니고 그런 건 안 된다’고 길게 말씀하시는 분도 만났다. (선거 목적으로) 여기 살다 떠난 정치인들에게 마음이 많이 상하셨던 것 같다.”

-노원 주민을 위한 공약은 뭔가.
“아직 발표 안 했다. 기본적으로 남편이 교육자였으니까 교육 관련된 게 많을 것이고 복지에도 신경쓸 것이다.”

-대선 당일 남편과 미국으로 떠나 82일간 지냈다. 그곳 생활은 어땠나.
“12월 말까지는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에 간 것 같다. 미국 유학 중인 딸이랑 같이 지내면서 마음을 치유하는 게 필요했다. 성탄절 때는 딸이 해온 자원봉사에 참여해 당근 깎고 배식하고 지냈다. 남편과 함께 마음을 추스르고, 운동과 산책도 했다. 미국에서 대학교재를 내는 3대 출판사 중 한 곳에서 500~1000쪽 책을 내기로 하고 연말을 목표로 집필 중이다.”

-남편은 미국에서 뭐했나.
“남편은 책을 많이 읽고 혼자 이어폰을 끼고 많이 걸었다. 음악을 들은 건 아닌 거 같고 시사 프로그램, 팟캐스트 같은 걸 들었다. (정치 구상을 한 것 아닌가?) 여러 생각을 하셨겠죠.”

-영화 『링컨』을 봤다고 하던데.
“정적들을 장관으로 등용한 링컨의 리더십을 다룬 책 『팀 오브 라이벌스』(한국판 ‘권력의 조건’·영화 링컨의 원작)를 다 읽고 나서 남편·딸과 영화를 봤다. 링컨은 정말 위대한 정치가 같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을 다룬 아카데미 수상 영화 『다크 제로 서티』도 봤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TV에 나와 자신이 젊은 시절 봤던 영화 『라이온킹』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주는 이벤트를 하고 나서 불과 몇 시간 뒤 다시 TV에 나와 심각한 목소리로 ‘빈 라덴을 사살했다’고 선언하는 걸 봤던 게 생각났다. 정치인은 겉으로는 어린이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표정을 지으면서 속으로는 (군사작전을) 계획하고, 그걸 동시에 처리하는 사람임을 깨달은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영화 『레미제라블』도 미국에서 봤다. 마지막에 등장인물 전원이 살아나 노래 부르는 장면이 좋았다. 남편도 이 영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 『링컨』에선 링컨이 결단을 내리는 데 부인의 역할이 크게 나온다.
“나는 결혼할 때 이 사람(안 예비후보)이 정치인이 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교수가 될 사람으로 생각하고 결혼했는데 갑자기 사업을 하더라. 의과대학보다 안철수연구소 쪽에서 남편을 훨씬 더 원했다. 그때 컴퓨터 백신을 개발한 사람은 남편 혼자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받아들였지만 마음이 아팠다.”

-남편이 ‘정치 하겠다’고 했을 땐 어땠나.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얘기한 게 아니라 상황이 진행되는 걸 같이 봤으니까, 담담히 받아들였다. 남편이 생각을 굉장히 오래하는 편이다. 그 생각 가운데는 나에 대한 고려도 있었을 텐데, 그런 끝에 결정을 내린 걸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이 내린 큰 결정들이 지나고 보면 조금 고생스럽긴 했어도 훨씬 더 좋고 의미 있는 선택이라고 믿어왔다. 그 때문에 이번에도 좋은 결정이라 생각한다.”

-대선 출마 당시 재개발아파트 딱지 구입설, 딸 위장전입설 등 여러 루머가 제기됐다.
“굉장히 부당하다고 느꼈다. 처음에는 너무 어이없고 화도 났지만 사실이 아니니 신경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특히 딸에 대한 루머가 나왔을 때 딸이 엄마, 아빠 잘못 만나 그런 것 같아 미안했다. 하지만 딸은 정치를 비롯해 아버지가 하는 건 다 좋아한다. 딸에게 아버지는 늘 최고다.”

-대선 당시 남편의 유세를 적극 지원할 줄 알았는데 강의를 여러 개 맡아 놀랐다는 사람들이 있다.
“(웃으며) 다음 학기 강의도 어제 다 신청했다. 대선 때 남편을 도우면서도 강의는 칼같이 했다. 정 어려우면 연가를 냈다. 그래서 1년 연가를 대선 기간 한 달 동안 다 썼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 나가는 건 긴장된다. 대선 때 호남에 여러 번 갔는데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내가 부산 남자를 제일 좋아하는 호남 여자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협상 때 어땠나.
“옆에서 보면 굉장히 힘든 일인데 남편이 현명하게 선택하기를 바랐다. 남편은 자기가 어려웠던 얘기를 직접 하지 않고 혼자 극복하는 편이다. 그래도 옆에서 보면 ‘힘들구나’하고 안다. 제가 오히려 감정 조절이 안 되는 편이다.”

-남편이 후보를 사퇴했을 때 심정은.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는데,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래서 딸이랑 다 같이 미국에 있었다.”

-본인도 성공한 여성인데 ‘안철수 처’라고만 소개한다면 섭섭하지 않나.
“상관없다. 미국 법조계 친구들을 만나면 (안 예비후보를) ‘내 남편’이라고 소개한다(웃음). 학문을 하면서 정치인 남편 내조를 병행하는 게 어떤 면에선 오히려 활력이 되더라.”

-남편 안철수와 정치인 안철수의 장단점을 각각 든다면?
“정치인 안철수는 어려운 길을 주로 선택한다. 국민 입장에선 장점인데 부인 입장에선 안타깝다. 남편 안철수는 따뜻하다. 본인이 힘들어도 내게 얘기를 하지 않고 늘 웃는 건 내 마음이 상하지 않게 해주려고 그런 거다. 남편 손이 굉장히 따뜻해 별명이 옛날부터 ‘손난로’였다. 같이 걸을 때 손을 꽉 잡아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다만 ‘경상도 남자’ 같은 측면이 있어서 사근사근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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