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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에 여자 3명이…민망한 '포드' 광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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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여성 납치를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논란을 일으킨 포드 인도법인의 ‘피고’ 광고. [CNN 홈페이지 캡처]

몸매가 그대로 드러난 옷을 입은 여성 세 명이 손발이 묶이고 재갈이 물린 상태로 차 트렁크에 갇혀 있다. 운전석에는 중년의 남성이 미소 지으며 손가락으로 승리의 브이(V) 표시를 하고 있다. 공포 영화나 연쇄 살인 사건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 인도법인의 소형차 ‘피고(미국명 피에스타)’ 광고였다.

 최근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며 사회 문제로 부각된 인도에서 포드의 선정적 광고가 인터넷으로 소개된 뒤 여론의 공분을 샀다고 CNN 등 외신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비난 세례를 받고 중단되기는 했지만 광고가 나온 배경엔 인도의 성범죄 증가나 여성을 경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깔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제가 된 포드의 광고 하단엔 ‘피고의 넓은 트렁크에 당신의 걱정을 놓아 두세요’라는 문구가 삽입돼 있다. 세 명의 여성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차량 내부가 넓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광고가 공개되자마자 납치 및 성폭행을 연상시킨다는 인도 여성단체의 반발이 이어졌다. 특히 세 가지 버전으로 제작된 광고에는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와 할리우드 배우인 패리스 힐턴 등의 얼굴이 삽입돼 논란을 키웠다. 광고 공개 후 포드의 사과를 받은 베를루스코니 측은 “여성을 죄수처럼 묘사한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면서도 “하지만 베를루스코니는 여성들을 죄수가 아닌 공주처럼 대했다”는 반응을 내놨다.

 광고가 물의를 빚자 포드 측은 곧바로 유감을 표명했다. 광고 제작사인 JWT인디아도 “일부 직원의 돌출 행동”이라며 사과했다. 그러나 포드가 의도적으로 노이즈 마케팅을 펼쳤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성범죄 논란이 거센 인도에서 납치와 성폭행을 연상시키는 광고를 내면 잡음이 생길 줄 알면서도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고 포드가 술수를 부렸을 가능성이 있다.

 인도 정신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힌두교 마누법전에는 ‘여성의 역할은 남성에게 순종하는 것’이라는 남존여비 사상이 담겨 있다. 뿌리 깊은 차별 속에 인도 여성은 결혼할 때 지참금을 챙겨 가야 한다. 지참금이 적으면 평생 구박받고, 심하면 살해당한다. 이에 부담을 느낀 카스트 하층 계급은 여아를 낙태시키는 경우가 많아 성비 불균형이 심각하다.

 여성을 낮춰 보는 시선 속에 성범죄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남성 6명이 남자 친구와 귀가 중이던 23세 여대생을 버스에서 집단 성폭행해 사망케 하면서 전국적으로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25일에도 22세 회사원 여성이 귀가 버스를 기다리던 중 괴한 4명에게 자동차로 납치돼 성폭행 당했다. 같은 날 한국 유학생이 인도 북동부 콜카타 시에서 인도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해 사과를 요구했지만 가해자는 이를 거부한 뒤 오히려 친구들과 함께 위협했다. 지난 15일엔 야영하던 30대 스위스 여성까지 남편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 당했다.

 인도 여성 인권 운동가인 란자나 쿠마리 박사는 “(포드의 광고는) 여성을 마치 물건이나 성적 대상처럼 바라본다”며 “지난해 12월 버스 집단 성폭행 이후 여성의 존엄성과 신체 결정권 신장을 모색하는 가운데 공개된 광고는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 변화를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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