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비 결혼한 백지연 귀국 후 첫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성미가 트레이드마크인 그녀가
'운명'에 대하여 이야기하다

결혼식을 치르기까지 그간 두 사람은 자신들의 결혼에 대해 말하는 것에 여간 신중하지 않았다. 특히 그녀는 결혼식을 십여 일 앞두고도 기자에게 “누가 12월에 결혼한다고 했느냐”며 끝까지 결혼식 코멘트를 피하곤 했다. 이제야 마음 편하게 기자와 만난 그녀는 워싱턴 신혼집 이야기부터 풀어나갔다. 동네가 좋고 문화시설이 잘되어 있는 곳에 송경순씨가 집을 마련한 것은 작년 1월 초. 당시만 해도 자신이 결혼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던 송경순씨는 혼자 살기 편안한, 그런 집을 구했다고 한다.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에요. 일하지 않을 때는 철저하게 쉬어야 하니까 집에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놨고, 집 주변에는 트렌디한 레스토랑이 많은 편이에요, 혼자 먹을 것을 해결해야 하니까. 또 미술품을 모으는 것을 좋아해서 집안 곳곳에 놓아두었는데, 그 취향이 마음에 들었어요.”

지금까지 알려진 송경순씨의 이력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나온 뒤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해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하다 국비유학생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에서 MBA를 취득했다는 것.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근무 시절에는 동양인으로는 드물게 고속 성장을 거듭해 부총재 자문역을 맡았으며,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국제금융 박사 학위를 딴 뒤 일본 노무라그룹 프로젝트 금융사의 수석 부사장을 맡기도 하는 등 금융전문가라는 것. 현재 미국 워싱턴에서 투자 및 금융 자문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가 백지연과 만나면서 달라진 일이 한국에서의 사업이 많아졌다는 것. 전에는 워싱턴과 홍콩을 위주로 사업을 했는데 이젠 한국의 일이 절반은 된다고 한다.

“클라이언트를 유치한 뒤 외국 기업의 자본금 투자 유치를 해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평생 해온 게 그런 ‘프로젝트 파이낸싱’이고 요즘은 기업 인수 합병 일도 하고 있어요.

자기 사업을 한 지는 3년 반쯤 됐어요. 그 일이 기밀사항이 많은 일이라서 저하고 이야기할 때도 말 안 해요. (그러면 혹시 기분 나쁘지 않냐고 묻자) 기분 나쁘지 않아요. 같이 있다가도 그런 사업상의 전화가 오면 제가 자리 비워주고 그래요.”

국내 지도자급 인사의 소개로 서로를 알게 된 두 사람. 이들은 직접 만나기 전 한 달 동안 이메일을 통해 서로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송경순씨가 자신을 소개하겠다며 A4용지 석 장 분량으로 이메일을 보내온 것이 시작이었다. 본인의 생각과 가치관이 정리되어 있는 그 글을 처음 받았을 때부터 어떤 범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다독(多讀)을 했다는 느낌과 강한 자신감… 송경순씨의 글에선 그런 것들이 배어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바로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시쳇말로 튕긴다거나 그래서 답장을 안 한 게 아니었어요. 답장을 쓸 자신이 없었어요. 그건 또 저의 자존심이기도 했어요. 상대방이 그런 ‘명문’을 보내왔는데 나 또한 명문으로 답을 하고 싶었거든요.”
무림 속의 고수들처럼 그들은 서로에 대해 한눈에 알아봤다. 3일 동안이나 끙끙거리며 원고 쓰듯이 구성도 하고… 안녕하세요? 하고 바로 인사를 할까, 뭘 갖고 화두를 꺼내나… 백지연은 그렇게 고민하며 밤을 꼴딱 새워서 글을 썼다. 그녀도 첫 글이라 A4용지로 두 장을 넘겼다. “글자도 얼마나 작았는데요” 하면서 자신이 제법 많은 글을 써서 보냈다고 신고한(?) 그녀는 말을 마친 뒤 쑥스러운지 앞에 있던 흰 냅킨으로 얼굴을 가렸다.

결혼 자체에 대한 기우와 갈등 씻어준 그
캘리포니아에서 비밀리에 결혼식 올린 이유

그렇게 시작된 이메일 교환이 많은 날은 세 통씩 오갔다. 당연히 아침에 눈뜨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 확인부터 했다.

당시 너무 재미있었다는 그녀는 송경순씨와 이메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들뜬 기분을 주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또한 송경순씨는 영타가 훨씬 편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위해 한타를 치는 배려를 보여주는 등 다정한 마음 씀씀이를 보여주었다고.

솔직히 ‘남자는 내 마음대로’ 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그녀는, 그를 만나면서 컨트롤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미소를 머금는다. 이제 그녀 앞에 그녀와 딱 맞는 임자가 나타난 셈인 듯.

송경순씨에 대해 한마디로 훌륭한 사람이란 평가를 하고 싶다는 그녀. 그렇게 데이트를 시작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확신을 한층 높일 수 있었지만 결혼을 결심하기까지는 쉽지만은 않았다.

“결혼 결심을 굳힌 건 어느 한순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에요. 왔다갔다(결혼할까 말까)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몰라요. 작년 4월에 한 스포츠 신문에서 ‘백지연 새 출발’이란 제목의 기사가 나왔을 때 제가 항의했던 것은, 당시엔 결혼 결심을 한 것도 아니었고 방송 은퇴를 결심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사람에 대한 확신은 두려울 정도로 처음부터 있었어요. 그러나 전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결혼 자체에 대한 확신을 내릴 수 없었어요. 굳이 왜 결혼을 해야 하나, 좋은 친구로 지내면 안 될까… 그런 갈등들이 있었어요. 한 번 실수하면 열심히 살던 사람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제가 경험해봤잖아요.”

그런 그녀의 기우와 갈등을 씻어준 것은 변함 없는 그의 사랑과 믿음이었다. 세계관과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고, 늘 자신감이 있는 그는 그녀가 사소한 일로 싸움을 걸어와도 화 한 번 내지 않았다.

그녀가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또 하나 고민한 부분은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아들 부분. 그녀는 그와 서로 탐색 기간을 거칠 때 이미 아들에 대한 부분을 짚고 넘어갔다.

“저를 만난 지 3일 후에 제 마음을 사고 싶다고 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말한 사람이면 제가 아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얼른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는 말을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성급하게 말하지 않았어요. 자신은 한 번도 ‘내가 다시 결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적이 없고, 더군다나 아이가 있는, 결혼을 한 번 해본 적이 있는 여자와 결혼을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이제부터 진지하게 생각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런 점이 오히려 제겐 신뢰감을 줬어요.”

그녀의 아들과 그의 세 딸들 모두 결혼 축하
정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싶다

그는 며칠 후 심플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판단을 내렸다. 자신은 백지연과 결혼하고 싶으며, 결혼해서 그녀가 환한 웃음을 짓는 것을 보고 싶다는 것. 그런 점에서 그녀의 목숨과도 같은 아들을 사랑하겠다고 했다.

그 얼마 후 두 사람은 아이를 데리고,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공원에 갔다. 아이와 자연스럽게 친해지기 위해서였다. 신기한 건 엄마가 있으면 엄마 외에 다른 사람에게는 잘 가지 않으려는 아이가 첫 만남에서 그를 따라 남자 화장실로 간 일이었다.

결혼 자체에 대한 회의가 차츰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그녀는 마침내 다시 새 출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성스럽고 경건한, 의미 있는 결혼식을 올리기로 합의를 했다. 원래 결혼을 하려고 했던 때는 작년 10월쯤. 그러나 송경순씨가 너무나 바쁜 나머지 시기를 놓쳤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주 팔로스(Palos)에 위치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웨이페러스(Wayfarers) 교회에서 치러진 결혼식. 그녀의 아들은 화동이 되어 엄마의 결혼식을 축하했다.

결혼식 후 멕시코로 4박 5일간의 꿈같은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두 사람. 이들은 요즘 서울에서도 살 집을 알아보았고 곧 이사를 할 예정이다. 한 2, 3년은 남편이 일방적으로 고생하기를 자청, 한국에서 한 달, 미국에서 한 달 등 이렇게 오갈 예정이다. 그녀 또한 틈나는 대로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갈 계획.

송경순씨의 세 딸 모두 아빠의 결혼을 대환영, 새 출발을 하도록 도와줘 모든 일에 감사하기 그지없다는 백지연. 결혼은 남한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사는 것인 만큼 정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싶다는 그녀. 간절한 그녀의 기원이 이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팟찌제공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