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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10화(6) 신극과 빈 의자 - 이해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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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재미없는 연극을 억지로 앉아서 보지 않고 도중에 나가버리는 것은 관객의 자유다. 그래서「뉴요크」의 「업브로드웨이」에 있는 「처리·디어터」 같은 데서는 처음에 입장권을 팔지 않고 무료로 입장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막을 남겨놓고는 극단 책임자가 나와서 일장연설을 한다.
『우리 연극이 여러분들이 끝까지 앉아서 볼만한 것이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금 배우들이 여러분의 앞으로 갈 것이므로 응분의 입장료를 지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방법이 돈을 미리 받고 재미없는 연극을 하여 도중에 퇴장하는 관객에 손해를 끼치는 것보다는 훨씬 양심적인지도 모른다.
흔히 우리 나라의 연극은 재미없다고 말한다. 연극을 한참 하다보면 그 나마의 관객조차 뒷자리를 텅 비워 놓는다. 신극- 그것은 반세기 전에 당시 동경 유학생들이 수입해 들여와 처음 신극운동을 벌였다. 곧 신극이란 구극(가무기)의 형식을 답습한 신파 연극과 같이 일본서 들어 온 말이다.
그래서 두 나라의 신극 운동에는 공통된 점이 있었다. 첫째 직업연극이 아닌 극장 밖에서 연극을 애호하던 젊은 사람들에 의해 신극이 시작된 점이다.
또 하나는 진정한 연극의 전통을 가지고 있지 못하여 선진국의 작품을 번역 상연했다는 약점이다.
그들 연극 애호인은 연극을 혁신하겠다는 이념만을 성급히 앞세운 나머지 당연히 습득했어야 할 배우수업을 쌓지 않고 무대에 섰다. 따라서 언제나 자기보다 키가 큰 작중인물을 쳐다보고 다녀야만 했고 때로는 작중인물을 자기의 작은 키에 맞춰 표현했다.
연극에서는 인물을 현실에서 보다 이상화하여 표현하여야 한다하지만 그들의 기능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해 작중인물을 인물 본래의 자세보다 훨씬 왜소하게 표현하기 마련이었다.
외국 작품에서 정신적인 영양만을 섭취하여 머리만 커져 가지고는 그 지적중압으로 말미암아 무대 위에선 손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아마추어」의 경지를 못 벗은 연극이 재미있을 수 없다. 그래서 「재미없는 연극」이라는 것이 신극의 통념이 돼 버린 것이다.
4년 전 「ITI 심포지엄」이 일본에서 개최됐을 때의 일이다. 공산 위성국서도 서너 나라가 참석하여 모두 20개국의 연극인 대표가 자리를 같이 했다. 「심포지엄」이 끝나던 날 「가무기」 공연에 초대받았다. 이 외국인들은 무려 5시간에 걸친 공연을 꼼짝도 않고 마지막까지 구경을 하는 것이었다.
「가무기」의 원시적인 연극 형태가 그들의 호기심을 끈 모양이다.
그러나 그 이튿날 소위 신극에 초대받고는 그러지 않았다. 신극의 전당인 배우좌에서 처음 1막은 전원이 특별히 마련한 좌석에 앉아 구경을 했는데 2막 때부터 한 두 사람씩 살살 빠져나가 버리더니 종막이 내렸을 때는 한국 대표로 갔던 유치진 선생과 필자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언어의 장벽도 있겠다. 그러나 일본의 신극은 외국 연극인이 보고 즐길만한 매력을 이미 잃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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