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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의 후광 속에서 옛것을 아끼며 10년 - 국립박물관 유물계장 이난영 씨(고고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역사의 자취는 귀하고 혜성과 같은 것이다. 옛 조상의 흔적을 모으고 아껴가면서 흘러간 역사의 후광 속에서 연구나 수집에 몰두하는 여성은 아주 드물다.
국립박물관 관리과의 유물계장 이난영 씨는 한국에선 「박물관학」·「고고학」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래선지 꾸준히 그 일에 매달려 있는 사람은 손을 꼽을 정도.
『지금은 제가 유적을 정리 관리하고 있지만 처음엔 「필드」에 나갔습니다. 발굴하면 직접 노동자와 일하고 잠자리 음식도 그들과 같이 합니다. 여자가 이런 일을 하기 힘든 것도 체력이 당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제천지방의 지석묘, 울산지방의 고분 발굴은 힘든 것들이지만 삽자루를 쥐고 참여한 보람에 만족한다고.
진주사범을 거쳐 서울문리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곧 이 박물관에서 10년을 보낸 이난영 씨는 그간 모아둔 자료로 올 4월에는 「삼국 및 고려시대 금석문추보」란 저서를 출판할 예정이라고 하며 박물관학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 유학이 실현 될 거라고 한다.
『모든 것은 실력으로 좌우되는 것이지요. 흔히 저보고 지기 싫어하는 여자라고 하지만 여자니까 뭐…하는 식의 소리는 듣지 않도록 해야죠.』 이처럼 한가지 일에 충실하다 보니 더 중요한 결혼은 놓쳐 버렸다고.
『전 가끔 서글퍼지지요. 여러 가지 관계자료의 불충분으로 애써 세운 가설이 하루아침에 뒤집어지지요. 일본이나 외국에서 충분한 증거로 내놓는 학설에는 어쩔 수 없죠. 항상 지각생을 면치 못하는 거죠.』라며 좀더 폭넓은 학술서적의 통관을 바랄 뿐이라는 그의 학구열은 대단하다.
마음이 울적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신라시대 불두 (8∼9세기경)를 바라보는 거죠. 그게 코가 찌그러져 버렸는데 수줍게 웃는 모습이 절 무심한 즐거움으로 끌어들인 답니다. 아마 코가 없어 더욱 수줍나봐요.』하고 유쾌하게 웃는다. 창 밖 덕수궁 앞뜰에는 드문드문 인적이 지나간다. 이름 모를 새가 고요로운 옛궁을 감싸듯 울며 간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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