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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경복궁·인왕산 사이 서촌 홍대앞 같은 예술촌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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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래된 서울
최종현·김창희 지음
동하, 364쪽, 2만원

“인왕산 자락의 누상동에는 겨울이 빨리 왔다. 깨진 유리창이 덜커덕 거리며 비바람이 방안으로 몰려들었고, 밤은 추웠다. (…) 이중섭의 누상동 시절은 그의 생애 마지막 불꽃이 타오르던 곳이었다.”

 화가 이중섭(1916~56) 평전의 한 구절이 아니다.

 “18세기 영조 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경복궁전도’에 따르면 경복궁의 정북 방향에서 경회루의 연못으로 들어가는 물길이 선명하고 (…) ‘간의대(簡儀臺)’라고 표시된 지점쯤이 바로 (남경)행궁터였으리라 생각된다.”

 한국사, 혹은 건축사의 한 자락 같지만 아니다. 우리나라의 도시와 취락의 역사를 천착해온 최종현 전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와 프레시안 편집국장을 지낸 김창희씨가 공동 저술한 이 책의 구절구절이다. 서울, 그 중에서도 사대문 안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렇고 그런 답사기나 추억담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사람 이야기를 두루 담았다는 이야기다.

 저자들은 『삼국사기』 『고려사』 등 사료를 분석하고, 치밀한 상상력을 발휘해 ‘서울’의 탄생이 900년 전이란 논거를 제시한다. 고려 시대 남경(서울)의 위치를 비정(批正)하고, 개경과 남경을 잇는 도로를 더듬어간다. 영락없는 역사책이다. 이건 ‘서울의 탄생’을 다룬 1부 4개 장에 한한 인상이다.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 흔히 서촌이라 불리는 지역에 초점을 맞춰 조선시대와 20세기의 변화를 다룬 2, 3부에선 시속(時俗)과 문화, 사람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서촌은 서울 도성 안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는 왕족들의 터전으로, 중기엔 사대부들의 세거지(世居地)이자 서인(西人) 학문과 예술의 발상지로, 후기에는 중인들의 문예운동이 꽃 핀 곳이었음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자하문로 왼편의 3000평이 넘는 블록 전체를 집터로 삼아 외부인이 감히 접근할 엄두도 못 낼 철옹성을 쌓았던 친일파 이완용도 등장한다. 반면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벌였던 김가진, 천재시인 이상, 꼽추화가 구본웅, 민족시인 윤동주, 진보적 민족주의자의 길을 걸었던 화가 이쾌대 등 서촌에 깃들었던 ‘인물’들의 삶을 만날 수 있다.

 서울에 관한 인문학 집성이라 할 이 책은 국내에선 드문 학자와 언론인의 ‘행복한 만남’에서 나왔다. 깊이와 재미를 모두 잡았기에 동대문과 광화문, 정동과 종로 등을 다룬 2, 3권이 더욱 기다려진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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