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에 스민 한국 혼 '이항성 화백 5주기 추모전 '

중앙일보

입력

'평화의 작가''색채의 마술사'.

올해로 타계 5주기를 맞은 이항성(李恒星ㆍ1919~97) 화백을 일컫는 말이다.

이화백은 1970년대 초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후 생애 후반 30여년을 그곳에서 활동했다. 현지에서는 고암 이응노 화백에 버금가는 평가를 받았지만 상대적으로 작품발표가 드물었던 국내 화단에는 생소한 작가가 되고 말았다.

2월 1일~3월 10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02-720-1020) 에서 열리는 '평화'전은 국내에서의 재평가를 위한 유작전이다.

'생명의 빛''평화의 념''동방의 빛' 등 대표작 40여점이 출품된다. 유족이 소장한 국내 미공개작으로 대부분이 1백호가 넘는 크기다.

그는 한지를 잘게 찢어 캔버스에 붙이고 먹과 아크릴을 칠한 뒤 다시 한지를 덮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업했다. 작품세계는 한국의 불화나 민예품과 같은 전통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추상화를 기조로 화면 한켠에 새.화초.상형문자 등의 이미지로 설화적 내용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화면의 중앙으로부터 밖으로 뻗치는 응축된 힘이 한지의 은은한 깊이와 어우러지는 게 특징이다.

그가 평생 추구해온 주제는 '평화'다. 해방 후의 정치혼란 속에 청년기를 보냈으며 한국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탓에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 누구보다 컸고 이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이 위대한 예술가는 캔버스 위에 한국인의 큰 향수를 그린다"(『25시』의 작가 게오르규)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가 작품에 서려 있다"(미술 평론가 이경성) "작품을 보면 '다정불심(多情佛心) '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시공을 초월한 명상과 해탈의 세계, 원초적인 생명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평론가 이일)

고인은 출국 전에는 국내 미술계에서 중요한 활동을 많이 했다.

47년엔 초ㆍ중ㆍ고교 미술교과서를 최초로 편저했으며 초등.고등학교 미술교과서도 편찬했다.

국내 첫 미술월간지인 '신미술'을 창간하고 대한미술교육협회장도 맡았었다.

그는 72년에 프랑스의 폴 파케티 화랑과 전속계약하면서 현지로 건너가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지역에서 활약했다.

폴 파케티는 피카소.샤갈 등이 소속했던 국제적인 상업화랑. 이화백은 파리의 동양미술아카데미에서 고암 이응노 화백의 지도를 받으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유족으로 장남인 홍익대 판화과 이승일(56) 교수를 포함한 아들 5명이 있다.

가나아트센터측은 "선생은 타계하기 바로 전날까지도 작업을 계속하며 예술혼을 불태웠던 집념의 작가였다"면서 "이번 5주기전은 생애와 예술을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