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천수답 증시 … 한국만 뒷걸음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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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외국인 천수답 증시’. 요즘 국내 증시를 보는 전문가의 시각이다. 외국인이 사고파는 데 따라 주가가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외국인은 파는 쪽일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글로벌 유동성이 한국 주식으로 흘러올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시작된 국내 증시와 세계 증시 간의 엇박자는 1분기가 다 가도록 계속되고 있다. 주요국 증시의 상승세를 한국 증시는 구경만 해야 했다. 지난달까지는 그럴듯한 핑계거리가 있었다. 엔화 약세와 원화 강세에 따른 수출 타격 우려다. 하지만 이달 들어 이마저 사라졌다. 환율은 안정세다. 강세를 보이던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21일 1115.7원을 기록하는 등 하락세로 돌아섰다.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도 95엔 선에서 머무른다. 그럼에도 코스피 지수는 2월 말 이후 3% 넘게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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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는 이 같은 뒤처짐의 원인을 외국인 매도에서 찾는다. 지난 15일 이후 닷새간 외국인 투자자는 1조7000억원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주로 삼성전자 등 대형주, 전기전자 주식을 팔았다. 김정환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뚜렷한 상승 동력이 없는 상황에서 당분간 외국인의 매매동향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럼 외국인은 언제 한국 증시에 돌아올까.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회의 결과는 외국인의 한국 주식시장 귀환 기대감을 높였다. 이날 FOMC는 매달 850억 달러의 국채를 매입하는 공격적 돈 풀기를 지속하겠다고 확인했다. 전지원 키움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회복이 확인되고 유동성 공급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외국인의 주식 매수가 가능하다”며 “연준 발표로 유동성에 대한 불안이 사라져 외국인이 한국 주식 매수로 돌아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성현 한화증권 연구원은 “연준 회의 결과에 따라 달러화 강세 추세가 꺾일 것”이라며 “환율 영향으로 2분기부터 외국인의 매수가 시작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직 멀었다는 견해도 적잖다. 송상훈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 자본시장에 외국인 자금이 안 들어오는 게 아니라 다만 채권 쏠림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일 사상 최저를 갈아치우며(채권 가격 상승) 연 2.75%인 기준금리를 밑돌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공격적으로 채권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한국 신용등급에 비해 국채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고, 지난달 중순 이후 원만하게 하락한 원화 가치가 연말께 다시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환차익을 기대한 투자로 풀이된다. 송 센터장은 “기업 이익이 정체돼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 주식의 매력은 크지 않다”고 봤다.

 신한금융투자 분석에 따르면 현재 코스피 지수의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은 2011년 말에 비해 0.6% 높은 수준이다. 이 회사 류주형 연구원은 “코스피 기업은 지난 15개월간 이익이 전혀 늘지 않았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 해당하는 기업의 EPS는 같은 기간 7.4% 늘었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보다는 미국 주식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아직 남아 있는 자산운용사 뱅가드의 기준지수 변경에 따른 매물도 부담이다. 매주 약 4000억원으로 추정되는 지수 변경 관련 매도는 6월 말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외국인이 전체적으로는 한국 주식을 팔지만, 일부 순매수하는 종목을 눈여겨보라는 조언도 있다. 최근 닷새 동안 외국인은 SK하이닉스, SK텔레콤, LG전자 등 IT 주식을 순매수했다. 이재만 동양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은 과거에는 IT 주식을 무차별 매도했지만 최근에는 종목별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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