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캐주얼 출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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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정장 대신 캐주얼 차림으로 일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1999년 CJ(옛 제일제당)가 대기업 중 처음으로 '복장자율화'를 선언한 이래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경영전문지 '현대경영'이 지난해 1백대 기업(매출액 순위)의 복장을 조사한 결과 완전 자율화를 실시한 곳은 28군데였다. 특정 요일에만 옷을 자유롭게 입는 회사도 45곳에 이른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동등하다.

회사는 일하는 곳'이라는 광고문구가 어느덧 현실이 된 것이다. 직장인들은 기존의 정장 차림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옷일뿐 자신이 일하는데 결코 편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창의적 사고와 업무수행의 능률 향상에도 복장자율화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캐주얼 차림으로 회사에 다니는 CJ 해외마케팅팀 김정수(33)대리, SK텔레콤 광고팀 전선영(26)씨, LG전자 TV마케팅팀 김지선(25)씨로부터 복장자율화에 대해 미주알 고주알 따져봤다.

행복한 자율 복장

▶김정수=회사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정장을 입었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복장이 인간의 사고를 바꾼다는 격언이 너무나 들어맞는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도 돼 건설적인 토론문화도 가능해졌다.

▶전선영=띠동갑으로 12살이나 나이 많은 선배들과의 거리감도 좁혀져 마치 친구로 느껴진다. 동료들의 생각이 젊어져 신선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바퀴 달린 운동화를 신고 다니며 환한 미소를 머금은 선배 얼굴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김지선=자리에 편하게 앉아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복장이 편해 야근도 즐겨 하고 있다.(웃음) 대학 시절 정장 스타일을 선호했는데 요즘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회춘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능률도 오르고

▶김정=복장 자율화와 더불어 직급에 관계없이 이름에 '님'자만 붙이는 호칭파괴와 출퇴근 탄력제가 직장인 문화를 바꿔나가고 있다. 분위기가 좋은 만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동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일 때문에 외근을 자주 한다. 복장이 자유로운만큼 언제나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수 있다. 몸이 가벼워져 기동성이 좋아졌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확실한 무기인 셈이다.

▶김지=능률 증진도 중요하지만 동료들의 스트레스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빡빡한 직장생활 속에도 자유로운 영역이 있다는 점에서 동료들이 만족해하고 있다.

약간의 불편도…

▶김정=경제적인 측면이 문제라면 문제다. 입사 초반 구입한 정장이 아까울 따름이다. 정장 8벌, 와이셔츠 20장이 이젠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캐주얼을 입는데 대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학생 시절처럼 아무 옷이나 막 입기가 그렇기 때문이다.

▶전=외부사람을 만날 때 복장 때문에 약간 무시당한다는 기분이 나기도 한다. 캐주얼을 입으면 어려 보이기 때문이다. 정장을 입으면 사람들이 모두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자율복장을 한 뒤 약간 촌스런 사람이 생겼다. 코디가 어설프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 고생이 심해지고 있다.

▶김지=입사할 때 정장차림의 핸섬한 남자 동료들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학교 때와 별다른 점이 없었다. 백마 탄 왕자가 아니더라도 소매와 와이셔츠를 약간 풀어 헤치고 일에 몰두하는 남자 동료를 기대했었는데, 꿈이 사라졌다.

이게 딱이야!

▶김정=학생 시절부터 캐주얼을 즐겨 입었다. 입사 초반 정장을 입고 다녔지만 캐주얼이 역시 어울린다는 얘기를 듣는다.

▶전=중성적인 캐주얼을 좋아한다. 바지를 즐겨 입는다. 치마를 입어도 후드티나 카디건을 위에 입는 레이어드 룩을 좋아한다. 역시 나는 캐주얼 체질이다.

▶김지=캐주얼.정장 스타일 둘다 즐겨 입는다. 문제는 부모님이 "너는 정장이 어울린다"며 정장만을 사오신다. 캐주얼 구입비용은 내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이런 일도…

▶김정=중국 주재원이 부서에 방문했다. 상당히 중국풍으로 옷을 입었다. 여기서 중국풍이란 것은 촌스런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그 분에게 "요즘 중국도 옷을 잘 만드네요"라고 물었다. 주재원의 대답은 "우리나라에서 샀다"였다. 좀 썰렁한가요.

▶전=입사 초반 직급을 혼동한 적이 많다. 사원인데 과장님이라고 부르고, 어떤 과장은 ○○○씨로 불러 야단 맞었다.

▶김지=직위는 대리인데 옷차림새 때문에 부장으로 승진(?)한 분이 있다. 본인은 이 별명을 무척 싫어한다.

회사 자랑은 팔불출?

▶김정=이젠 개성시대다.개성을 존중하는 회사에서 창의성을 더욱 발휘하고 싶다.

▶전=젊은 이미지의 통신회사인 만큼 나의 끼를 맘껏 펼치겠다.

▶김지=정장을 입고 다니는 다른 회사 사람들이 우리를 만날 때마다 부러워한다. 무슨 부연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글=강병철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전선영(26)

SK텔레콤 광고팀 2001년 입사

서울여대 체육학과 졸업

★김정수(33)

CJ 해외마케팅팀 대리 1995년 입사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김지선(25)

LG전자 TV마케팅팀 2002년 입사

외국어대 아랍어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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