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다시 길거리 나앉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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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25일 오후 국내 최대 노숙자 보호시설인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자유의 집'. 노숙자들이 숙소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어두운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최근 법원이 자유의 집 부지와 건물을 소유주에게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려 보호시설이 폐쇄될 처지에 놓이자 노숙자들은 언제 길거리로 내몰릴지 몰라 불안에 떠는 모습이었다.

金모(45)씨는 "이젠 술을 끊고 일자리도 찾아 열심히 살아볼까 마음 먹었는데 막막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중랑 하수처리장이나 서남 하수처리장에 대체시설을 만들고 각 구청 사회복지 시설에 노숙자를 분산.수용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유의 집이 담당했던 노숙자들의 사회적응 및 정신교육 프로그램이 사라지면 효율적인 노숙자 재활 사업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폐쇄위기 놓인 '자유의 집'='㈜집과 사람들'은 지난해 3월 자유의 집 부지를 주상복합건물 신축용으로 95억여원에 사들인 뒤 서울시에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서울시가 반환을 거부하고 지난해 4월 부지를 사회복지 시설로 지정하자 ㈜집과 사람들은 소송으로 맞섰다. 지난 8일 서울지법 민사합의 15부는 "서울시는 원고에게 건물과 부지를 돌려주고 무단 점유로 인해 발생한 부당이득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수용 규모 1천여명인 자유의 집에는 현재 7백여명이 입소해 재활 훈련과 함께 알코올 중독 치료 등을 받고 있다.

◇불안한 노숙자들=자유의 집에서 만난 노숙자들은 "이곳에서 숲가꾸기 사업 일자리를 마련해줘 삶의 의욕을 찾고 있는데 이제 떠나야 한다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대부분 지하철역 부근에서 떠돌다 찾아온 노숙자들 가운데 30% 가량은 정상 생활이 불가능한 알코올 중독자들이다.

자유의 집 서계식 실장은 "대부분 자포자기 심정으로 이곳을 찾은 뒤 정신치료와 컴퓨터 교육 등 실기 교육을 통해 삶의 의욕을 가지고 나간다"며 "재활 프로그램이 비교적 잘 갖춰진 이 시설이 없어지면 노숙자들은 다시 지하철역이나 쪽방촌을 전전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서울시 대책=서울시는 중랑.서남 하수처리장에 각각 3백~4백평 규모의 가건물을 세워 노숙자들을 받아들이고 가족 노숙자에게는 자립을 위한 전세자금을 지원하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주민 민원을 최소화할 수 있고 시유지라서 비용도 적게 들어 하수처리장을 노숙자 부지로 정했다"고 말했다.

시는 이와 함께 자유의 집 폐쇄 이후 늘어날지 모르는 노숙자들에 대비, 서울역과 영등포역에서 노숙자 임시 쉼터로 운영 중인 '드롭인 센터(drop-in center)'를 확대 운영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 운영 중인 노숙자 시설이 수용에만 초점을 맞출 뿐 장기적인 사회적응 훈련은 어려운 실정이다.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 서정화 실장은 "자유의 집이 없어지기 전에 노숙자들의 재활치료를 대신할 시설을 시급히 확보해야 한다"며 "노숙자 정책도 수용보다는 재활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충고했다.

손해용 기자 hysoh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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