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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연금보험이 흔들리면 노후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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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권혁주
경제부문 기자

참 이상했다. 노후 대비 상품인 연금저축보험. 정상적이라면 수익률 높은 상품에 고객이 몰려야 한다. 노후를 생각할 때 수익률 좋은 게 최고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연금보험 상품 수익률과 가입자 수는 별 관계가 없다.

 손해보험사 연금보험을 보자. 가입계좌 수 1~3위 상품의 최근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0.3~2%. 아슬아슬하게 본전을 지킨 수준이다. 2007년 12월 31일 이전에 출시돼 5년 이상 묵은, 다시 말해 매년 올리는 수익률이 어느 정도 검증된 상품 중에 가입계좌 수 1~3위의 성적이 이랬다. 손보사들이 공시한 수익률과 가입계좌 현황을 중앙일보가 들여다본 결과다(3월 1일자 14면, 3월 20일자 1·10면 ). 반대로 손보사 연금보험 수익률 톱10 중에는 가입계좌 수가 100개도 채 안 되는 상품이 있다. 그야말로 ‘계좌 수는 수익률 순이 아니잖아요’였다.

 수익률이 아니라면 뭐가 가입자를 끌어들였을까. 가입계좌 1~3위 상품엔 어렴풋이 공통점이 보였다. 사업비가 쏠쏠했다. 10년 동안 고객이 매달 붓는 돈의 8.6~10%를 보험사가 사업비로 가져갔다. 사업비란 고객 유치·관리비 등의 명목으로 불입액 중 보험사가 떼 가는 몫을 말한다. 이 중 상당 부분은 보험 설계사 수당으로 지급된다. 그렇다면 이런 짐작이 가능하다. ‘사업비를 많이 떼니 수당이 두둑했을 것이다. 그래서 설계사들이 판매에 열을 올렸다. 같은 이유로 은행도 방카슈랑스를 통해 이런 연금보험을 열심히 팔았고 가입자가 많아졌다’. 결과는 수익률 안 좋은 상품이 많이 팔린 것이다. 납입금에서 사업비를 잔뜩 떼는 데야 수익률이 좋을 리 없다.

 수익률이 저조할 것이 뻔한 상품이 잘 팔린다는 건 문제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가입자가 노후에 고통을 겪는 것뿐이 아니다. 연금보험 수익률이 부실하면 나라는 고령자 복지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한다. 연금보험 유치를 하기 전에 상품 설명을 철저히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보험사들은 나름대로 고객이 이해를 못한 상태에서 계약을 하는 ‘불완전 판매’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연금보험 상품 가입자 수와 수익률의 연관 관계는 아직도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금보험은 은행 연금신탁과 자산운용사의 연금펀드로 구성된 전체 연금저축 상품 가운데 75.5%를 차지한다. 연금보험이 그만큼 국민 노후를 크게 책임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제대로 설명하고 제대로 판매해야 하는 보험사의 책임이 무겁다. ‘금융은 신뢰가 생명’이라는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가뜩이나 노후가 위태로운데 연금상품마저 제 구실을 못하면 소비자에게 노후는 없다.

권 혁 주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