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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0만원, 배보다 배꼽이 큰 간병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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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간병인 장경신(56)씨가 지난 18일 서울 중랑구 북부병원 병실에서 폐렴으로 입원한 남성 환자를 돌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뇌졸중 환자 장모(82·서울 동작구)씨는 재활병원을 옮겨 다니며 치료를 받아왔다. 가족이 간병하기 힘들어 간병인을 썼다. 일요일은 가족이 맡았다. 하루 간병비는 7만5000원. 마비가 심하고 몸집이 크다는 이유로 한 달에 5만원을 더 냈다. 지난 1년간 간병비로 2600만원이 나갔다. 진료비(약 2000만원)보다 많다. 자녀들이 보태긴 했지만 부족해 예금 두 개를 깼다.

 중증 환자는 간병인 구하기도 쉽지 않다. 폐암 환자 이모(62·서울 강서구)씨는 간병인 파견업체 세 곳을 수소문했지만 간병인을 못 구해 한동안 애를 태웠다. 말기환자라서 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에서다. 어렵게 간병인을 구했지만 비용(월 200만원)이 만만찮다. 진료비(100만원)의 두 배다. 이씨의 딸(37)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말했다.

 큰 병에 걸리면 진료비도 부담스럽지만 간병비가 환자를 더 짓누른다. 건강보험이 안 되는 데다 연말정산 때 소득공제 혜택도 없다. 환자와 간병인 간 사적 계약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영수증을 발급할 수 없어서다.

 간병비 부담 때문에 가족이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한화 협력회사에 다니던 신경천(60·경기도 하남시)씨는 2005년 딸 아름(30)씨가 신경계 희귀병인 다발성경화증에 걸리면서 딸 간병을 하느라 회사를 그만뒀다. 치료하는 데 1억원이 넘게 들었다. 신씨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틈틈이 다른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한다. 한 달에 70만~80만원 벌어 치료비를 대지만 턱도 없다. 62.7㎡(약 19평형) 연립주택을 담보로 7300만원을 대출받았다. ‘환자 발생-간병 퇴직-소득 감소-빈곤 추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연세대 신촌세브란스 재활병동에서 만난 뇌졸중 환자(80)의 부인은 “한 달간 간병비로 200만원이 들었다. 이게 무서워 재활치료를 더 못 받겠다”고 말했다. 재활병동 소아환자(12)의 삼촌은 “간병비가 비싸 나하고 아이 엄마가 밤낮으로 교대하면서 애를 돌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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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병제도는 한국·대만 등 일부 국가에만 있다. 서울북부병원 권용진 원장은 “미국·일본 등은 병원이 간호 서비스의 하나로 간병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국은 인력·재원 부족 때문에 기형적으로 가족들이 떠안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의대 안형식(예방의학) 교수의 ‘한국형 간호간병 도입 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암·뇌질환 등 급성질환 환자의 19.3%, 치매 등 장기요양환자의 88%가 간병인을 쓰고 있다. 이들 간병인에게 지불한 비용은 3조원(2009년)으로 환자 한 명이 275만원을 지출했다. 급성환자 하루 간병료는 6만~8만원이다. 간병인 한 명이 환자 한 명을 맡는다. 요양병원은 간병인 한 명이 평균 8.3명을 공동 간병한다. 하루 2만~3만원이다. 간병인을 쓰지 않을 경우 급성환자의 34.6%, 장기요양환자의 12%가 가족이 간병한다.

 보건복지부 이창준 의료정책과장은 “간병을 간호 서비스에 포함해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7월 100억원을 들여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전문가들도 이 방향에 공감한다. 고려대 안 교수는 “간호사가 간호보조인력(간호조무사 등)·간병인 등을 거느리고 간병까지 포괄간호 서비스를 제공하되 병실에 보호자·간병인이 상주하지 못하게 하자”고 제안한다. 경희대 정형록(세무회계학) 교수는 이 안을 시행하려면 간호사와 간호보조 인력이 올해 기준으로 최소한 12만 명 필요하고 3조3000억~7조60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정했다. 이 돈은 건보재정으로 충당해야 하는데, 3조원만 잡아도 건보료를 10% 정도 올려야 한다.

 서울북부병원 권 원장과 서울대 의대 김윤(의료관리학) 교수는 “장기적으로 정부 방안대로 가되 단기적으로는 병원이 간병인을 고용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입원료를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허대석(종양내과) 교수는 “투입하는 돈에 비해 효과가 떨어지는 고가의 항암제를 건보 적용하는 것보다 간병료가 더 급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배지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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