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박사 국내 1호 배병주 전 적십자병원장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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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주 박사(흰색 모자 쓴 이)가 적십자병원 근무 시절 농촌 순회진료를 다니던 모습.
배병주

한국 현대 의학사 증인이자 국내 산부인과 박사 1호인 배병주 전 적십자병원장(배병주산부인과 원장)이 18일 별세했다. 91세.

 고인은 평생 청빈의 삶을 살며 인술을 펼쳤다. 특히 별세하기 몇 달 전까지도 수십년간 이어온 봉사활동 현장에 있었다. 차남인 보라매병원 배광범 교수는 “아버지는 돈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사셨다. 경제적으로 힘든 환자는 무료로 진료하셨다”며 “한국생명의전화에서 40년 동안 봉사하셨다”고 말했다.

 1969년 설립된 생명의전화는 자살기도 등 삶의 위기에 놓인 사람들에게 상담을 통해 새 희망을 주는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한다. 배 전 병원장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5개월 전까지 하루 두 시간씩 한국생명의전화 사무실에 나갔다. 배 전 병원장은 국내 산부인과학의 대부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불모지나 다름없던 산부인과 영역의 임상과 연구를 활성화했다.

 고인은 1922년 함경남도 고원에서 지금의 군청 공무원 격인 지역 관리직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제 강점기 때 사범대학에 들어갔다. ‘교사’가 이 암울한 시기 그나마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신체검사에서 안질 때문에 낙방했다.

 어려서 마음에 품었던 의사가 되기 위해 경성의전(서울대 의대의 전신)에 입학한 배 전 병원장은 47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모교에서 무급 조교수로 일했다. 이 시기, 국내 처음으로 태아의 영양섭취에 중요한 작용을 하는 자궁융모상피세포에 발생하는 종양, 자궁융모상피종을 연구했다. 58년 관련 논문으로 서울대에서 국내 첫 산부인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외래교수로 일하던 고인은 61년부터 24년간 적십자병원 산부인과 의사로 재직했다. 일반 환자는 물론 전상자와 영세민의 무료치료까지 맡아 힘든 자리였다. 고인은 의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묵묵히 진료현장을 지켰다. 75년부터 7년간 적십자병원장도 지냈다. 정부는 82년 그에게 박애금장을 수여했다.

 배 전 병원장은 적십자병원에서 ‘배씨자궁거상기’로 불리는 장치를 개발했다. 자궁을 들어 올려 여성의 나팔관을 묶어 임신을 조절하는 장치다. 이 장치에 미니랩( 조금만 개복해서 하는 수술)을 접목해 난관불임수술 분야를 개척했다. 이 방법은 1960년대부터 70년대 초까지 정부의 가족계획에 큰 족적을 남겼다.

 고인은 58년 서울 회현동에 132(약 40평) 규모의 배병주산부인과를 개원했다. 배 전 병원장은 산부인과를 확장하지 않았다. 소박한 그대로 두고, 별세하기 얼마 전까지도 의료 소외계층을 위해 진료했다. 대한가족계획협회와 대한불임시술협회 회장으로도 일했다.

 유족은 부인 김지화(전 이화여대 교수)씨와 아들 용범(변호사)·광범(서울의대 교수·보라매병원 산부인과)·상욱(연세의대 교수·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씨, 딸 상경(수원대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발인 20일 오전 10시. 02-2227-7556.

황운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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