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경제권에 두 「불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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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서구경제권에는 두 갈래의 중요한 소용돌이가 시작되고 있다. 하나는 불황에 우는 서독경제, 또 하나는 초 긴축정책으로 「파운드」화 방위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는 영국이 또다시 EEC(구주공동시장)에의 가맹을 희망하고 나선 것이다. 「라인」 강변의 기적을 이룩하고 번영을 노래하던 서독이 20년간의 악장에 종지부를 찍은 지 1년, 불황극복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적의 주역 「에르하르트」 전 수상의 정치생명까지 앗도록 그 상처가 깊어졌는가 하면 4년 전 불란서 「드골」의 콧대에 등을 밀린 영국이 또다시 EEC에 추파를 던지지 않을 수 없도록 「파운드」권의 재기가 어렵다는 것은 세계적인 경기확대가 곧 한나라의 경제불안을 감싸주지 않는다는 것을 예시하는 점에서 깊은 관심을 끌게 하고 있다.

<서독>무역수지 역조·느는 실업자 등 숨가쁜 긴축재정
「서독경제위기」라는 적신호가 울리기는 1년여 전부터.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 동안 처음으로 무역수지가 적자를 보이면서 불황의 싹이 텄다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었다. 이러한 경제위기는 ①생산성을 뛰어넘는 임금의 상승 ②소비물가의 앙등 ③무역수지의 역조 ④주가저락 ⑤예산의 팽창 ⑥상품의 국제경쟁력약화 등으로 빚어진 결과라고 분석되었고 따라서 서독은 지난해 12월부터 불황타개를 위해 긴축제정정책으로 방향전환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긴축정책은 오히려 경제성장을 둔화시켜 금년 9월의 공업생산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8% 떨어졌는가 하면 공사수주도 2·5% 하락했고 투자재산업의 내국수주도 7% 줄어들어 갈수록 고뇌를 커가게만 할뿐이다.
또한 설비투자도 저조하여 많은 대기업이 당초계획을 감축시키는 형편인데다 불황의 거센 파도는 노동력수급에도 일격을 가하고 있는 듯하다. 번영의 정상에 있을 때는 60만명의 노동자가 부족 되고 있던 것이 올해는 45만명으로 줄어들고 실업자는 14만명을 넘어 59년이래 팽팽하게 버티어오던 노동시장의 긴장이 처음으로 완화되기 시작하고 있다.
오늘의 서독경제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루르」 공업지대의 양상. 공업생산부진으로 인한 저탄량은 2천만「톤」을 넘고 서독실업자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제 불황과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던 정치위기가 가시기는 했으나 불황의 고비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 대 연정이란 선박도 별로 순탄한 항로만을 갈 것 같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파운드」 지역보다 큰 EEC권 수출 활로 찾아 몸부림
「파운드」화 방위를 위해 임금·물가동결이라는 비장한 수단까지 동원한 영국이기는 하지만 계속되는 국제수지의 악화는 영국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EFTA(구주자유무역연합)에서의 위치마저 허약하게 한 반면 EEC는 「드골 거부권」의 장벽을 뚫고 공업과 농업 두 분야의 단일시장형성을 성공, 『이제는 영국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시장』(가디언지)이 됐다.
지난 8년간 EEC의 역내무역은 3배 이상으로 확대, 올 여름 EEC 전체의 금·외화준비는 2백억불 선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EEC가 성장을 거듭하여 세계최대의 수입권이 된데다 수출에 있어서도 세계 제2위라는 위치를 다져놓자 불황에 떠는 영국으로서는 EEC 가맹에 군침을 삼키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그러나 영국의 EEC 가맹은 경제적 여건보다도 먼저 정치적 문제가 선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 63년 1월 영국은 EEC 가맹을 결의하고 그 교섭을 전개했으나 마지막 단계에 가서 불의 「드골」이 거부권을 행사, 영의 가입을 좌절시켰기 때문. 그 당시 「브뤼셀」 교섭이 실패한 것은 영국가입의 세 조건, 즉 ①영연방특혜문제처리 ②EFTA와의 관계조정 ③영국농업의 이익존중 등의 문제가 원만히 타결되지 못한 데에 있었다.
이중 가장 어려운 문제인 농업문제를 보면 영국은 현재 필요한 농산물의 3분의 1을 호주·「뉴질랜드」·「캐나다」에서 수입하는 반면 국내농산물에 대해서는 가격차보상금을 지급, 가격을 눌러놓고 있다. 그러나 EEC에 일단 가입하면 이러한 특권이 없어지고 EEC와 공통농업정책을 채택해야되며 이렇게 될 경우 식료품은 10%에서 14%로, 생계비지수는 2·5에서 3·5로 상승하고 무역수지도 연간 1억7천5백만에서 2억5천만 「파운드」 정도 적자를 보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EEC 가입을 서두르는 것은 영국의 수출지역이 「파운드」 지역보다 EEC권으로 향해 확대를 거듭, 59년에 수출전체에서 EEC권이 14%, 「파운드」 지역이 41%였으나 65년에는 EEC권이 91%로 늘고 「파운드」 지역은 28%로 줄어들어 전체적인 수지를 놓고 보자면 영의 EEC 가입이 유리한 조건 위에 서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영국은 4년 전 「드골」에게 당했던 「푸른 눈의 스트립」(「드골」이 영국의 의사를 하나하나 발가벗긴 후 결국은 거부해 버린 것을 비난하는 비유)이라는 수치를 감춘 채 다시 EEC 가입을 「윌슨」 수상의 말대로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 하여간 50만명 이상의 실업자를 안고 고민하는 영국이 EEC에 가입하려면 여러 가지 경제조건보다는 「드골」 불란서대통령을 비롯한 EEC 6개국의 수뇌가 영국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지 하는 고도의 정치문제가 선결문제임에 틀림없는 것 갈다. <현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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