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위례산 위에 550m 둘레 토성 … 흑성산 위엔 570m 둘레 석축산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6면

흑성산 정상을 둘러싸며 만들어진 흑성산성

나들이 하기 좋은 계절이다. 낮 기온이 15도 이상 오르면서 겨울 내내 입었던 두터운 점퍼는 이제 옷장 속에 집어 넣어도 될만하다. 성급한 봄 꽃들은 벌써부터 몽우리를 터트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제 오래지 않아 온 천지가 각양각색의 꽃들로 넘쳐나리라. 그 향기 또한 사방에 진동할 것이다. 이번호에서는 가벼운 차림으로 야생화가 만발하는 위례산과 흑성산을 올라보자. 높이 500여 m의 그다지 힘들지 않은 산이지만 봄 산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천안의 보물이다.

정리=최진섭 기자 도움말·사진=백순화 백석대 교수

◆위례산=입장면 호당리와 북면 운용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523m이다. 위례산에는 위례산성과 식수로 사용한 듯한 우물 ‘용샘’, 문받침 돌로 여겨지는 큰 돌 반쪽이 남아 있다. 위례산에는 바위가 많다. 바위 위로 소나무가 자란 모습은 비경이다. 또한 흙이 부드러워 야생화와 둥굴레가 서식하는 군락지가 많다.

◆위례산성 용샘=위례산성은 둘레가 550m, 높이는 약 3m의 흙으로 쌓은 성으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직산 위례성이라 불리는 곳이다. 위례성은 그동안 일부 학자들에 의해 부정된 바 있었던 백제의 첫 도읍지로 최근에 천안시와 향토사학자들의 노력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위례산성 아래로 미끄러지며 내려가니 위례산 우물 용샘이 숨어있다. 여기에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 떨어뜨리면 그 실이 서해안에 다다랐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위례산 용샘에 관한 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백제가 공주에 수도를 정하고 있을 무렵, 한 왕이 남침해 오는 고구려의 군사를 막기 위해 이곳 위례산까지 와서 군사들의 사기를 높여 주고 전쟁을 독려했다. 이 왕은 용왕의 아들로 사람으로 변신하여 온갖 재주를 다 부리는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이 이곳에 올 때는 용으로 변해 공주에서 위례산 용샘까지 땅속 물줄기를 타고 단숨에 왔다. 고구려군은 영토를 확장하고자 틈만 있으면 백제를 공격했다. 그러나 번번이 패하기만 했다. 백제군이 승리를 거듭한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왕이 이곳까지 와서 여러 가지 조화를 부려 전쟁을 지휘했던 까닭이다. 백제왕은 이처럼 날마다 새벽에는 용으로 변해 공주에서 이곳 용샘으로 나와 전쟁을 지휘하고, 밤에는 공주로 가서 낮에 하지 못한 정사를 살폈다. 그 덕분인가? 백제는 날로 강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날도 왕은 새벽에 위례산으로 군사를 지휘하러 나갔다. 왕실에서는 날마다 낮에는 어디론가 갔다가 밤에만 나타나는 왕을 이상하게 여겼다. 특히 불만이 많던 왕의 처남은 왕비에게 왕이 간 곳을 물었다. 오빠의 속셈을 모르는 왕비는 왕은 사람이 아니라 용이라는 말을 했다. 가뜩이나 왕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그는 왕을 죽이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용이 좋아한다는 제비를 잡아 낚싯밥으로 만들어 가지고 왕이 용으로 되었다가 사람이 되어 나오는 강가로 갔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왕이 용이 되어 공주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왕의 처남은 낚시를 강물에 던져 놓고 용이 와서 물기를 기다렸다. 하루 종일 산성에서 전쟁을 지휘한 탓에 왕은 피로한 데가 시장기까지 느껴졌다. 그때 마침 용이 가장 좋아하는 제비가 보였다. 왕은 너무도 배가 고팠기에 얼른 그것을 물었다. 그러자 왕의 처남은 힘껏 낚싯대를 당겨 용을 낚았다. 그 용은 공주 우성면 동대리 마을에 가서 떨어져 죽었다. 왕이 죽은 이튿날, 백제군은 위례산 전투에서 패하고 말았다. 백제군은 무릎을 꿇고 통곡을 했다. 이처럼 전쟁에서 지고 울었다 하여 이 산을 위례산이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용샘으로 어떻게 용이 출입 했을까? 샘물에 손을 담그니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흑성문

◆흑성산=목천읍 남화리의 뒷산으로 높이는 519m이다. 본래 이름은 검은성으로 검자에는 거룩하고 신성하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 큰 산을 말한다. 그러나 소리 나는 대로 검은색을 한자화 한 것이다. 또한 산 정상에 올라가면 성벽이나 바닥이 검은 돌로 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산 정상에는 흑성산성 터가 있으며 복원된 성루와 흑성문이 있다. 산 정상에 포토존이 있어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래서인지 흑성산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로 2012년에 선정되기도 했다. 목천면 서리에서 산정까지 군용도로를 개설해 놓아 흑성산성까지 차량으로 편하게 갈 수 있다.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 소나무 숲이 좋고 멋진 일출과 운해를 볼 수 있는 흑성산 여행을 한번 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흑성산성=목천현의 서쪽, 험하고 가파른 흑성산 위에 있는 석축산성으로 흑성산 정상을 둘러싸며 만들어졌다고 한다. 성의 둘레가 570m로 본래 모습을 찾기는 힘들지만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성벽의 높이가 6척이며 가운데는 우물이 하나 있다고 기록돼 있다. 또한 이 지역은 풍수지리상 서울에서 외청룡이 되며 ‘금계포란형’의 명당 길지로 알려져 흑성산성 바로 아래 1983년에 건립된 독립기념관이 있다.

 흑성문에 들어서니 우측에는 성밖의 사정을 성안의 군사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노대가 서있다. 중계탑 아래 계단을 올라 사주문에 들어서면 천안시 관광 홍보관이 있다. 밖에는 천안시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전망대가 설치돼있다. 산 정상이라 바람이 거세고 구름이 끼어 청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천안 시내를 조망할 수 있어 좋았다.

 관광 홍보관에서 내려와 공심돈에 들렀다. 이곳은 적의 동정을 살피는 일종의 망루로서 수비와 공격을 겸할 수 있도록 설계 된 것인데 나에겐 예쁜 작은 성으로 보였다. 성 안은 독립기념관을 조망할 수 있는 정자와 작은 공원을 꾸며 놓아서 볼거리가 제법 많다.

◆목천향교=목천읍 교천리에 있다. 향교는 공자와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주로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목천향교는 1523년 조선 중종 때에 세워졌으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전란 후에 다시 세운 후 수차례 수리를 했고 참봉 한혁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문이 굳게 잠겨 있어 안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과 명륜당·동재·서재·내삼문 등이 있으며 충청남도 기념물 제108호로 지정돼 있다.

◆용연저수지=목천읍 교촌리 흑성산 아래 있는 저수지다. 1966년 준공돼 옛날에는 농업용수로 사용했던 저수지였으나 최근에는 토종 붕어와 잉어등이 잘 잡혀서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 낚시터이기도 하다. 현재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저수지 수량을 늘리기 위해 제방을 높이고 일부 구간은 확장 공사를 하고 있다. 용연저수지 주변에는 청소년 야영시설과 작은 조각공원이 있었으나 대대적인 공사로 주변 경관이 어떻게 변할 지 예측하기 어렵다. 앞으로 독립기념관과 연계한 문화관광, 휴양지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 2001년 개원한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 입구 모습.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2001년 청소년의 수련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목천읍 교촌리 흑성산 아래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이 개원했다. 수련원에 들어서니 중앙 광장에 세워진 태극기물결이 가슴을 뜨겁게 한다. 광장에 서면 흑성산 송신탑이 보이고 벽면에 설치된 작품과 현대식 생활관이 잘 어울린다. 숙박시설은 약 9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식 생활관과 한옥으로 지은 민속관이 있다. 온돌과 침대, 가족실 등을 보유하고 있어 시설을 사용해 본 학생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체험 및 체육시설로는 천문관, 도예실습관, 승마장, 야외공연장, 국궁장, 독립군 활동 체험장, 산악자전거 활동장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다양한 문화 활동과 공연, 연수 등 많은 것을 체험 할 수 있어 학교와 직장에서 선호하는 곳이다. 넓은 대지와 자연이 함께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청소년 인성교육장이며 ‘맑고 밝고 푸른 청소년 세상을 만들자’는 미션으로 세계 최고의 센터로 성장 발전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