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을 하는 김호중(22)씨는 고등학교 시절 격투기에 빠져 있었다. 격투기 K1의 청소년 챔피언까지 올랐다. 그의 주먹을 먼저 알아본 것은 조직폭력배였다. 김씨는 이후 조직폭력배에게 휩쓸려 학교 결석을 밥 먹듯이 했다. 예술고에서 성악을 배우던 그는 퇴학될 위기에 놓였다. 수렁에 빠진 것이다.
김천예술고등학교에서 성악을 가르치는 서수용(53) 교사는 그 무렵 후배 교사의 전화를 받았다. 성악 쪽에 재능 있는 제자가 학교를 그만둬야 할 처지에 놓였다며 대신 맡아 줄 수 없겠느냐는 당부였다. 대구지역 예술고교에서 김군을 지도하던 성악과 과장이었다.
서 교사는 일단 김군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노래 한 곡을 듣고는 그의 재능에 반했다. 그는 “2분30초 정도 되는 한 곡만 듣고도 더 들어볼 필요 없이 뛰어난 재능을 확인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서 교사는 곧바로 김군을 김천예술고로 전학시켰다.
대구에 집이 있던 서 교사는 그때부터 6개월 동안 김천까지 김군과 함께 자신의 자동차로 등·하교하며 다독이고 격려했다. 무단결석을 막기 위해서였다.
김군은 점차 안정돼 성악 공부로 되돌아갔다. 다시 재능이 살아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김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고음 처리가 가장 어렵다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무난히 불러냈다. 전 세계적으로 고교생이 부른 적이 없다는 어려운 노래다. 서 교사는 김군의 연주 장면을 인터넷에 올렸다. 정성은 행운을 불렀다. 김군은 인터넷 영상 덕분에 3학년 때 SBS ‘스타킹’ 프로그램에 나가 ‘카루소’를 불러 2승을 차지했고 ‘고딩 파바로티’로 불리기 시작했다. 김군은 이후 한양대에 입학했으나 그만두고 독일에서 노래 공부를 한 뒤 공연 활동 중이다.
서 교사와 제자 김씨의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14일 개봉한 영화 ‘파파로티’(감독 윤종찬)는 김천예술고에서 벌어진 이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됐다.
서 교사는 영화 제작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김천예술고에서 영화를 찍을 수 없겠느냐고 제안했다. 학교를 알릴 좋은 기회란 생각 때문이었다. 영화사는 촬영 장소를 이미 확보한 상태였다. 대신 그는 영화 속에 어떤 식으로든 김천예술고를 넣어 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그래서 배우의 대화 속 10여 곳에서 김천예술고가 언급된다. 서 교사는 또 “김군의 동기생들은 한국예술종합학교·한양대의 성악과 수석과 서울대에 한 명이 합격할 만큼 실력이 뛰어났다”고 덧붙였다. 1986년 개교한 김천예술고는 음악과·조형예술과로 구성된 사립 특목고다.
김천예술고는 15일 오전 전교생 350여 명이 교사 20여 명과 함께 창의체험 활동으로 김천 프리머스 시네마에서 단체로 이 영화를 관람한다.
김천예술고 이신화(71) 교장은 “우리 학교가 감동적인 영화의 소재가 돼 영광”이라며 “이 영화가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기고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관계를 정립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송의호 기자 yeeho@joongh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