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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장과 도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법률과 시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오히려 상극인 편이다. 법률의 조문이 시적인 영감에나 젖어 있다면 범인들은 좋다구나 하고 술술 빠져나갈 것이다. 마치 법이 성경의 재판일 수는 없는 것과 같은 비유다. 「프랑스」의 정치가이며 「저널리스트」였던 「페르지난드·프로콘」은 그러나 법률과 시를 악수시켰다. 그는 4백72 「페이지] 나 되는 2천2백81개의 조문과 시행령과 주역과 수정사항들로 이루어진 「프랑스」의 민법전을 시로 꾸민 것이다. 그것도 전자계산기와 같은 오늘의 이해시가 아닌, 부드럽고 감동 있는 어휘로 운율에 맞추어 무려 12만 어의 장시를 유려하게 썼다. 어지럽고 막막하고 위협적인 「뉘앙스」를 가진 법조문은 「프로큰」의 시화작업으로 대중가요처럼 누구의 의식에도 무리를 주지 않게 되었다.
이런 「창작」은 대시인의 야망과는 뜻밖에도 아무 관계가 없었다. 「프로콘」은 정치가들에 의해 힘껏 유식하게 「위장된 법률이 무식한 대중들에게 보다 많이 적용되는 것에 늘 회의를 품고 있었다. 법의 「유식」은 대중들에겐 함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깊이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나폴레옹」 3세 때의 법조문들은 그에겐 그렇게 못마땅했다.
우리의 법률에도 「유식한」 문구들은 너무 많다. 그 「유식」은 대부분이 일본 것을 차용한 것들이다. 하다못해 수사관의 조서마저도 일제 때의 몸서리를 상기시킬 만큼. 그때의 그런 투 대로다.
법무부는 뒤늦게나마 새해부터는 어렵고 까다로운 법률용어들을 정비할 계획이라고 한다. 「목견」을 「본다」로, 「자이」를 「이에」로, 「준수」를 「지키다」로… 이런 식이다
「인장」을 「도장」으로 고치는 것도 퍽 친숙한 느낌을 준다. 이왕이면 자신의 진술조서가 어떻게 꾸며 졌는지도 모를 만큼 「난해한 문서」가 돼버리는 수사기관의 그런 투도 이 기회에 고칠 수는 없을까? 「용어의 현대화」 아닌, 그보다 절실한 「용어의 국산화」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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