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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시론] 다음은 투명성이다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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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회계의 투명성이 가장 앞서 있다고 자타가 공인해온 미국이 지난 4년간 6억달러 가까이 이익을 부풀려 오다 파산한 엔론 게이트 사건에 휘말려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벤처기업 붐을 이용한 사기꾼들이 정현준.진승현.이용호.윤태식의 소위 4대 게이트 사건을 일으켜 그 파장이 권력의 핵심부를 강타하고 있다.

*** '법보다 관행'의 후진성

성경에 나오는 워터게이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율법을 듣고 참회했던 장소였다. 그런데 현대판 게이트 사건들은 모두 거짓말과 부도덕성으로 점철돼 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상징이자 주역이었던 대우그룹 역시 부실회계 금액이 무려 22조9천억원에 달하는 세계 기록의 불명예를 안고 도산했다.

국제투명성위원회에서 98년에 발표한 반부패지수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10점 만점에 4.2점으로서 85개국 중 43위를 차지해 짐바브웨와 같은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가 중에서는 멕시코(55위)를 제외하면 최하위였다. 이 순위는 99년에는 99개국 중 50위, 2000년에는 90개국 중 48위로 더욱 낮아졌다.

우리나라와 같이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고, 사회의 규범이 미흡하고, 과속의 경제성장을 지속해 왔고, 관행이 법치에 우선하고, 이기주의의 사고와 행동이 지배하며, 지배계급의 책무의식이 철저하게 결여된 사회는 이러한 평가가 오히려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이제 국민은 웬만한 부패사건이 드러나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일상적이고 관행적인 부패가 모두를 무감각하게 만들었으며 접대문화가 일상화돼 있고 선물과 뇌물이 불분명한 우리 사회 풍토에서 부패와 청렴 역시 정도의 차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부패의 정치.행정적인 원인은 실효성 있는 반부패정책 의지와 실천능력의 부족, 직업정치인으로 인한 고비용 정치구조, 부패에 대한 관대한 처벌, 과도한 정부규제와 불합리한 행정행태이고, 경제적으로는 정부주도의 국가발전 전략과 공무원의 낮은 보수수준이 원인이다.

사회적으로도 부패에 대한 모호한 개념, 가치관의 혼란, 모방소비와 시민의 부패에 대한 안일한 의식 등이 원인이 됐다.

정부와 기업의 관계 역시 임의적이고 불투명하며 비합리적이어서 기업이 어려워질수록 비정상적인 해결책에 대한 의존과 미련이 높아갔다. 그 결과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전후 3년간인 96~98년의 기업 접대비 총액은 10조원에 달했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윤리성에 대한 사회적인 비판이 높아지자 최근 CEO 포럼에서는 윤리헌장을 채택해 회원들에게 준수 의무를 부여했고 벤처기업계의 리더들도 모여 윤리강령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그 동안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과정에서 있었던 권력의 개입, 불공정한 증권거래 현상, 양대선거와 관련해 앞으로 예상되는 정치자금 수요 등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특단의 조치가 없이는 투명한 사회란 요원해 보인다.

*** 지도층 책임의식 다져야

먼저, 검은 돈에 대한 사회적인 수요를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시장원리상 수요가 있으면 공급은 생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둘째, 부정부패에 대한 사회적인 감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내부고발자를 철저히 보호하고 보상해야 한다.

셋째, 권력기관의 내부 자정장치를 강화하고 사정기관과 사법 당국의 부정부패에 대한 판단기준을 더욱 엄하게 해야 한다.

넷째, 공직자들의 윤리규정을 대폭 강화하고 준수 여부를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다섯째, 기업 대주주와의 거래 금지와 공시.내부통제의 강화, 지배구조의 정상화,외부감사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 등 기존의 기업 투명성 정책을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투명한 사회를 위한 가장 중요한 선결조건은 무엇보다도 국정 지도자의 확고한 의지와 정치권.고위 공직자.권력기관 등 사회지도계층의 책무의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金一燮(한국회계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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