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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토크쇼] 시민의 지식인화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TV드라마 ‘아줌마’가 지식인을 희화화(戱畵化) 해 인기를 얻었다.지식인들이 아줌마들의 우스갯거리가 된 바로 그뒤 ‘곡학아세 논쟁’과 ‘홍위병 논쟁’이 등장하면서 지식인들은 새로운 역할을 찾은 듯했다.

그렇지만 극단적으로 다를 것 같은 두가지 현상의 이면엔 분명 지식인의 위기 현상이 자리잡고 있었다.지식인을 더 이상 존경받지도,신뢰의 대상이 아닌데가 그들의 비판적 기능이 가졌던 도덕적 우월성마저 무너진 것이다.


바로 이런 시점에 두명의 사회학자가 새로운 지식인 상의 모색에 나섰다.강수택교수(경상대,사회학) 의 『다시 지식인에 묻는다』(삼인) 와 정수복 박사의 『시민의식과 시민참여』(아르케) 가 동시에 새로운 지식인을 찾아 나선 것은 우연이라고만 할 수 없다.

자신의 위기를 스스로 되짚어보는 것,그리고 새로운 상(像) 을 찾아나선 것이야말로 그 본질에 부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지식인론을 연구한 강박사와 프랑스의 알렌 투렌 밑에서 지식인론을 공부한 정박사 두 사람은 어떻게 보면 국내외 지식인 사회를 넘나들며 성찰하기에 적합한 인물인지도 모른다.

며칠 뒤 프랑스로 공부하러 가는 정박사를 만나기 위해 강교수가 시간을 내 창원에서 올라왔다. 두 연구자는 자신들 저술 속의 몇가지 화두를 중심으로 지식인론을 전개했다.

◇ 왜 다시 '지식인'을 되물어야 하는가?

강수택=1990년대를 거쳐 치열하게 전개됐던 논쟁이 90년대 후반 들어 수렴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지식인의 위상이 다시 급격히 변하고 있어 새로운 모습이 모색돼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과거의 논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논의의 공통분모를 찾고 싶었다.

정수복=지금 기능적 신지식인상이 떠오르며 지식인의 무용론.악용론도 제기됐다. 어쨌거나 사회 전체의 방향을 제시하는 총체적인 사회지식인상은 일단 무너졌다. 그러나 지식인의 역할은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일상적 시민생활과 연계해 새로운 지식인상을 찾을 필요가 있다.

강수택=정체성도 문제다. 고전적 지식인의 정체성에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지식인이 과연 일반인에게 얼마나 관심거리가 되었는지 의문이고 그들의 문제제기도 오늘날 변화한 위상에 부합하는지도 의문이다.

정수복=지식인론이란 지식인의 자기성찰이다. 지식인이 사회변화에 따라 어떻게 응전해왔는가를 성찰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성찰하는 것이다. 이젠 지식인이 특정 권위의 대변자이자 증인이던 시대는 지났다.

◇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강수택=과거의 비판적 지식인에 새로운 요인을 가미해 '시민적 지식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내 책의 목표다. 비판적 지식인에는 투사의 이미지가 고착화돼 있다. 과거에 비판적 지식인이 요청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그 방식은 지성을 통한 저항.비판이어야 한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학력중심의 과거와 달리 지식인이 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졌고 정신.육체노동의 구분도 불분명해져 누구나 지성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시민 지식인'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직업.학력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관계 방식을 요구한다고 나는 본다.

정수복=공감한다. 나는 이를 '공론적 지식인'이라고 표현했다. 대중에 휩쓸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양식과 사회를 비판.분석하고 제대로 된 사회에 살고 있는가를 질문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비판적 지식인상의 붕괴는 대중사회의 등장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영상화,이미지,상품화와 관련돼 있다.

◇ '시민적 지식인'은 무엇인가?

강수택=우리 사회에서 도덕적 일치는 매우 힘들다. 중요한 것은 국가.자본권력에 영합하지 않고 시민 생활세계의 보호에 성찰의 끈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예전과 달리 지식인들이 다양한 형태의 생활세계운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식인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시민이 시민운동에 참여해 지적훈련을 받고 있다. 기존의 지식인이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것과 함께 아래로부터 시민을 지식인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정수복=시민의 지식인화,지식인의 시민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시민의 지식인화를 통해 새로운 지식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흔히 지식인에게 비(非) 당파성과 중립성을 강조하는데, 지성과 성찰을 바탕으로 지식공동체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강수택=객체가 아니라 주체로서 자아, 시민으로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주체의식이 있어야 모든 주체가 참여하는 연대적 주체를 형성해 자율성을 지켜나갈 수 있다. 만약 이런 주체를 만드는 것을 포기할 때 언제든지 지식이 기능화해 권력집단에 종속될 우려가 있다.

정수복=지식인이 소속된 조직논리에 따라 기능화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시민이 주체가 되는 시민공론의 자율성이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이 공론의 자율성이야말로 지식인이 살기 위한 물이기 때문이다.

◇ 그러면 지식인은 무엇을 해야 하나?

강수택=오늘날 강력한 신자유주의의 기능적 논리로부터 지식인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시민과 지식인의 다양한 연대가 요구된다. 아울러 지식인들의 네트워크,그 중에서도 특히 글로벌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정수복=지금을 '위험사회'라고 하지만,전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집단이 없다. 오늘날 지식인의 역할을 냉소적으로 보면, 고물상이나 오퍼상에 비유할 수 있다. 지식인이, 그것도 연대적 노력을 통해 '위험 사회'를 넘어설 큰 숲을 그려야 할 것이 아닌가.

강수택=지성은 모든 인간에게 존재한다. 그러나 상품화하는 지식을 생산하는 데만 집중, 생각의 깊이를 심화하는 노력이 부족하다.

인문학의 위기는 비판적 지성의 황폐화로 이어져 인간적 삶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사회.정리=김창호 학술전문위원 〈wjsan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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