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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낙하산 떠난 자리에 또 낙하산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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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공공기관장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고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주재한 첫 국무회의에서 “새 정부가 막중한 과제들을 잘 해내려면 인사가 중요하다”며 “각 부처 산하 기관장과 공공기관장은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공공기관장 중에서 임기가 남아있더라도 해당 부처 장관과 인사위에서 전문성과 적절성 여부를 다시 검토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이로써 대통령이 법률에 따라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공기관 70여 곳을 포함한 140여 곳 기관장은 물론, 부처 장관이 임명하게 돼 있으나 실질적으로 청와대가 관여했던 3000여 자리도 인사 영향권에 들었다.

 새 정부가 출범했으니 기존 기관장에 대해 평가하는 건 자연스럽고도 필요한 절차다. 김대중 정부 이래 ‘공공부문 선진화’니 ‘공기업 개혁’이니 하는 약속들이 공언(空言)이 되어가는 사이 공공기관의 전체 부채(463조5000억원)가 정부 부채(420조7000억원)를 넘어설 정도로 공공부문의 경영 부실이 심각해진 상황 아닌가. 제대로 된 사람을 인선하는 게 그간 잘못을 바로잡는 첫 출발이다. 그래서 “인사가 중요하다”는 박 대통령의 인식은 옳다.

 다만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까지 언급한 대목은 걸린다. 역대 정부에서의 씁쓸한 경험 때문이다. 공공기관장을 포함한 공공부문의 자리들이 논공행상용으로 소진되곤 했다. 일종의 전리품이었다. 정상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앉히기 위한 갖은 무리수가 동원됐고, 임기가 남았는데도 전 정권의 사람이란 이유로 내쫓고 경쟁 후보는 억지로 주저앉히곤 했다. 그러는 사이 경영은 뒷전이고 정치권 줄대기가 횡행했다. “낙하산 인사를 안 하겠다”고 다짐했던 이들도 막상 정권을 잡으면 낙하산 인사를 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대놓고 전 정권 인사들을 밀어내다가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역대 정권은 그때마다 국정 철학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능력이 똑같다면 대통령의 정책을 잘 이해하고 착실하게 이행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을 써야 한다”고 말했었다. 악순환이었다.

 박 대통령만큼은 다를 거라고, 또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과거부터 낙하산 인사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피력한 터 아닌가. 당선인 시절인 지난해 12월에도 이명박 정부의 보은성 낙하산 인사를 두고 “전문성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보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었다. 적어도 도덕적 논란이 있거나 실적에 문제가 있는 기관장이 아니면 임기를 지켜주는 게 마땅하다. 낙하산을 또 다른 낙하산으로 대응해선 구습(舊習)을 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