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리뷰] 패러디 집합 '엑셀 사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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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에서 '코메디' 분야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이미 '만담가'라고 하는 직업이 존재했고, 유명한 만담가는 제자를 양성하여 일가를 이루기도 했었다. 그러니 그 역사는 최소 300년 이상은 된 셈이다.

우리나라가 '유교'의 이념 아래 ‘웃음(笑)’을 억제해왔던 반면 일본은 '개그' 분야를 키워왔다. 그런 만큼 일본인에게 있어 '개그'는 친근한 문화이고 오랜 동안 다른 문화 분야에 영향을 끼쳐왔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처럼 다수의 사람들이 즐기는 매체 또한 '개그'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1960년대부터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개그'는 지금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웃음을 안겨줬다. 그 다양한 ‘개그’의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요즘 유행하는 '패러디' 라는 장르다.

’패러디’란 원래 있었던 모습을 희화화 후 재구성하여 매체를 통해 다시 보여주는 것을 뜻한다. 만화, 애니메이션 장르는 ‘패러디’가 유난히 발달한 장르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알려진 정보를 종종 희화화해 표현한다.

이번에 소개할 애니메이션 '엑셀 사가'는 바로 그런 '패러디 애니메이션'의 대표적 작품이다.

이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는 1편에 다 나와버린다. 주인공 엑셀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비밀특무기관 '아크로스'에 취직한다. 아크로스의 총수(?) 일파라쵸는 '이 세계는 썩어있다!'는 한 마디와 함께 세계 정복을 꿈꾼다. 그러나 세계 정복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먼저 일본 정복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 또한 여의치 않자 다시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서 일본의 F현 F시를 선택하여 '도시 정복'을 목표로 한다. 이에 ‘아트로스’ 요원인 일파라쵸와 엑셀, 그리고 신입인 하이얏트와 비상식량인 멘치는 F시 점령을 위해 투입, 침공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물론 이런 종류 애니메이션이 모두 그렇듯이 성공하진 못한다. ^^;;)

이 애니메이션에 과연 얼마나 많은 패러디가 들어 있는 걸까? 많은 애니메이션을 봐온 필자도 20여 개 정도 밖에 못 찾았다.

순서 없이 나열해 보자면, 은하철도 999, 북두의 권, 기동 전사 퍼스트 건담, 캡틴 하록, 우주 전함 야마토(마츠모토 레이지 작품이 많다), 디지 캐럿, 기동전함 나데시코, 람보, 루팡 3세, 봉신연의, 신세기 에반게리온, 감바(쥐가 주인공인 고전 명작 애니메이션), 명견 실버, 불의 새, 에어리언, K2, 후레쉬맨 같은 전대물, 거인의 별, 투 하트, 마징가 Z, 도키메키 메모리얼 등등…

이외에 '이건 뭔가의 패러디 같은데...'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많기 때문에 패러디 한 작품은 더 많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렇게 '엑셀 사가'는 수많은 작품들을 여기저기 차용하여 이야기의 재미를 더욱 살리고 있다.

그러나 '엑셀사가'는 패러디만이 전부인 작품은 아니다. 부제인 '엉망진창 실험 애니메이션'이라는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름대로 수많은 '실험'이 행해지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 감독(나베야마 신이치)이 직접 성우까지 맡아가면서 조연급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애니메이션의 원작자에 제작진까지 출연하고 있다. 스토리 면에서도 실험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야기 속에서 뜬금 없이 또 다른 스토리가 진행하기도 하고, 갑자기 '시청률 강화기간'이라는 제목 아래 여자만 등장하기도 하고, 심지어 중간 집계처럼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총정리도 해준다. 황당하지만, 시청자를 웃기기 위해 여러 가지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무슨 주제를 전달하는 것도 아닌, 단지 재미로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 큰 의의라고나 할까. 어쨌든 재미 있는 애니메이션임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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