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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류들의 24시] 7. 일본 '사칸' 료칸 부지배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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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한 지 8백50년.우리의 감각으로는 귀를 의심할 정도의 연륜이다.일본 동북부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시의 ‘사칸(佐勘)’은 ‘전승(傳承) 천년의 집’으로 불리는 유서깊은 료칸(旅館)이다.

우리의 고려시대 중반께인 헤이안(平安)시대 말기에 세워져 33대에 걸쳐 한곳에서 료칸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초대 주인 사토 간자부로(佐藤勘三郞)의 이름을 딴 사칸의 생명력은 역시 손님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다.

이곳의 부지배인 무라타 기미에(村田喜美枝.50)는 '사칸의 얼굴'이다. 일본어로 오카미(女將)라고 불리는 여주인(오너의 부인)을 대신해 손님을 맞이한다. 또 나카이(仲居)라고 하는 객실 여종업원들을 일선에서 지휘한다.료칸 자체가 서비스업이지만 그 중에서도 최일선에서 손님을 대하는 자리다.

그는 당초 자신이 료칸의 '야전지휘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여주인과의 친분으로 13년 전 프런트 업무를 보기 시작한 것이 료칸에 빠져든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잠시 일하다 그만둘 생각이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을 폭넓게 사귀고 응대하는 일에 깊이를 느꼈다고 한다.

그가 일의 깊이를 채우기 위해 들이는 정성은 그냥 '서비스 정신'으로 표현하기엔 영 모자란다. 그의 일과는 오전 5시30분에 시작돼 보통 오후 9시까지 이어진다. 손님들의 연회가 늦게 끝나면 자정까지라도 대기한다. 도저히 집에서 출퇴근할 수가 없어 료칸 부근의 종업원 숙소에서 다른 직원들과 함께 묵고 있다.

그는 "몸이 견뎌주는 것이 스스로도 신통하다"고 말했다.

손님 앞에서의 몸가짐이나 말투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손님에게는 반드시 일본어로 '미쓰유비(三つ指)'라고 하는 정중한 절을 한다.

양손의 엄지.인지.장지를 다다미 바닥에 가지런히 맞대고 머리를 바닥까지 낮춰 하는 큰 절이다. 방문을 열 때도 꼭 무릎을 꿇고 두손으로 연다. 대화를 할 때는 존경어와 겸양어를 정확히 사용한다.

이런 언행이 어색하지 않게 나오려면 입사 초 3개월간의 교양교육으론 어림도 없다.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일류 서비스'는 묻지 않고도 손님이 가장 편안해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마치 이심전심을 통한 '심기(心氣)경호' 같다고나 할까.

그는 매뉴얼에만 의존하는 기계적인 서비스나 매끄럽기만 한 표피적인 친절은 오히려 손님에 대한 실례이자 불친절이라고 단언했다. 마음을 불어넣어야 차가운 매뉴얼이 따스한 감성으로 살아난다는 생각이다.

"손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려는 손님에게 자꾸 말을 걸면 실례지요. 반대로 유쾌한 대화를 즐기는 손님에게는 풍부한 화제로 이야기를 이어가야 합니다. 이를 현장에서 신속하게 파악해 융통성있게 대응해야 프로입니다."

그렇다고 무슨 독심술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가 매일 '사칸답다'고 인정받는 최상의 서비스를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마치 전쟁에 임하는 것 같다. 오전 9시30분이면 접객.요리 등 담당별 간부회의를 연다.

이때 그날 숙박손님의 직업.나이.성격.건강상태 등에 대한 브리핑을 한다. 또 오후 2시엔 여종업원들만 따로 모아 회의를 한다. 고객정보를 모두가 공유해 각자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목적이다.

"A손님은 감기기운이 있으니 이불을 두꺼운 것으로 준비하자, B손님은 치아가 약하니 음식을 부드럽게 만들자, C손님은 성격이 급하니 시키는 것을 빨리 해주자…."

이같은 고객정보는 예약을 받을 때 몇마디 질문을 통해 얻는다. 또 1~2분간의 체크인 과정에서 짧은 인사말을 나눠보고 손님의 성격을 재빨리 파악하는 것도 노하우다.

체크인 후에는 단 하루를 묵는 손님에 대해서도 이름과 얼굴을 순식간에 외워 반드시 '아무개님'이라고 올려 부른다. 손님이 떠난 뒤에는 "지난번에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는 짧은 인사장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손님은 '나만을 위한 서비스'라고 만족해한다.

세태의 변화를 따라잡는 것도 그에겐 중요한 일이다. 시대에 따라 손님들이 받고 싶어하는 대접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호황기에는 일에 지친 샐러리맨 손님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한다. 먼저 농담을 걸거나 손님의 기분을 띄워주는 말을 하는 식이다. 반면 요즘같은 불황기에는 가급적 차분하게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도산이다, 감원이다 하는 불안을 모두 잊고 잠시나마 편히 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손님들의 '주파수'변화를 잡아채 신속히 맞춰주는 이 미묘한 차이가 사칸이 지니는 경쟁력의 원천인 셈이다.

당연히 손님들은 감동한다. 얼마 전엔 사칸을 다녀간 한국인 손님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며 무라타를 서울로 초청한 적도 있다. 만족해하는 손님들의 모습에 그는 고달픔을 말끔히 털어낸다.

그는 "료칸이 좋아 일과 결혼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힘들 때가 많지 않으냐"는 우문에는 "밝은 모습으로 손님을 맞으려고 힘든 일은 다 잊는다"는 현답으로 받아넘겼다.

센다이=남윤호 특파원 yhnam@joongang.co.kr>

*** '전통식 서비스 + 현대식 경영' 새 바람

일본의 료칸(旅館)은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의식주 생활문화가 한데 모여있는 복합공간이다.

따라서 서양식 호텔과 일본의 료칸 중 어느 것이 더 경쟁력이 있는가를 따지는 것은 마치 서양화와 동양화 중 어느 것이 더 예술적인지 가리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료칸은 한국의 여관과는 차원이 다르다. 같은 이름인데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하면 곤란하다. 알기 쉽게 값으로 따지면 여관은 호텔보다 싸지만 료칸은 대개 호텔보다 비싸다. 또 역사가 깊을 뿐 아니라 손님을 마치 에도(江戶)시대의 쇼군(將軍) 모시듯 하는 서비스도 비교할 수가 없다.

일본인들은 료칸만의 서비스를 맛보기 위해 마음에 드는 곳을 수십년 단골로 삼기도 하고 1년 전에 방을 예약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외국인이 단시간 내에 일본문화를 체험하는 데는 료칸에서 묵어보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도 한다.

우선 방의 구조가 전통 다다미로 돼 있어 이부자리를 깔고 잔다. 이부자리는 반드시 밤에 종업원이 방으로 직접 들어와 깔아주고 아침엔 정해진 시각에 걷어준다. 손님은 이부자리에 손 댈 필요가 없다.

식사도 방에서 한다. 중급 이하의 경우 따로 식당에 모여 하기도 하지만 아침.저녁 모두 손님의 방으로 날라주는 것이 기본이다. 메뉴는 대부분 일본 전통요리다. 지역에 따라 특산물을 사용한 독특한 향토요리를 내주는 곳도 있다. 맛 뿐 아니라 식기와의 시각적 조화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요리를 한꺼번에 차리면 식으므로 손님의 식사속도를 봐가며 하나씩 내온다. 종업원은 자기가 맡은 객실들의 요리시중이 겹치지 않도록 식사시간을 10~15분 정도 엇갈리게 잡는다.

체크인 한 뒤에는 료칸이 제공하는 일본식 '유카타(浴衣)'로 갈아 입는 것이 관행이다.

료칸 내에서는 유카타 속에 내의만 받쳐입은 채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다닌다. 공동으로 이용하는 대욕장에선 온천 분위기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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