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악재 '치명적 결합' 5년 내 올 것규제철폐·교육개혁으로 돌파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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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호 16면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한국 보수주의의 사상적 근거를 마련한 제1세대 학자다. 1937년생(76세)으로 서울대 정치학과와 하와이대 석사(사회학)를 거쳐 서울대에서 박사(정치사회학)를 받았다. ‘사상계’에서도 일했다.

“박정희식 산업화 리더십은 28년 전에 이미 수명을 다했다. 이제 한국을 2차 산업사회에서 3차 지식기반사회로 통째 바꾸지 않으면 3대 악재가 겹쳐 나라가 망하는 길에 접어들 것이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금 한국에 필요한 리더십의 요체를 이렇게 정의했다. 국내에 정치사회학을 뿌리내린 첫 세대인 송 교수는 역대 대통령들의 리더십을 갈등과 통합이란 프레임으로 분류했고 포항제철 창업주인 고 박태준 회장의 리더십(‘태준이즘’)과 임진왜란 당시의 명재상 유성룡의 리더십(자강과 실용) 등을 분석해온 리더십 전문가다. 송 교수와의 인터뷰는 서울 불광동에 위치한 그의 서재에서 4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의 서가엔 『맹자』와 영어 원서, 신간, 서예 책들이 즐비했고, 읽고 있는 책 페이지마다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 있었다.

리더십 전문가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국가 흥망에서 리더십은 어떠한 위치를 갖는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쓴 고구려론, 백제론, 신라론을 보면 삼국 중에서 백제가 제일 강한 나라라고 했다. 하지만 제일 약한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 그때 신라엔 리더가 두 사람 나오는데 김춘추와 김유신이다. 그들 덕분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이다. 리더십은 국가 흥망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리더십은 구체적으로 뭔가.
“국가 흥망은 리더에게 달렸다. 항상 국가는 위기를 맞는데 리더는 위기관리를 잘해야 한다. 그래서 리더를 잘 만나는 나라는 흥할 수 있다. 조선에 리더가 없으니까 일본에 당했다. 일본에선 1856년 메이지유신이 일어나는데 선각자 후쿠자와 유키치가 이때 『서양사정』이라는 책을 쓴다. 단번에 20만 부가 팔렸다. 30년 뒤 그의 제자인 조선인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은 겨우 500부가 나갔다. ‘20만 대 500’의 차이가 일본과 조선의 차이였다. 이렇게 조선은 리더들이 없으니까 백성을 가르치지 못하고 망한 것이다.”

-리더십의 요소로는 무엇이 있나.
“우선 통찰력이다. 상황은 바람과 같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도자는 남보다 먼저, 정확히 봐야 한다. 둘째는 지인지감, 즉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다. 이 점에서 탕평정책은 필요하지만 탕평인사엔 반대한다. 능력 있는 사람 대신 지역·학맥 안배에 치우치면 인사를 그르친다. 셋째는 ‘방법’의 리더십이다. 방법과 뜻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취약한 게 이거다. 넷째는 유연함이다. 지도자가 타인의 얘기를 경청할 때 사회통합이 잘된다. 마지막은 성취의 리더십이다. 성취 없는 리더는 있어도, 성취 없는 리더십은 있을 수 없다.”

-리더십 하면 흔히 창업과 수성의 리더십을 거론한다. 박근혜 정부의 리더십은 어떨 것이라고 보나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은 창업을 했고, 다른 대통령들은 대체로 수성을 잘했다. 박근혜 대통령 5년이 참 중요한 시기다. 우리나라가 지금 ‘치명적 결합상태’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고령화, 복지 확대, 대중영합적 민주주의 세 가지가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거다. 이 세 가지 문제가 합쳐진 나라 가운데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한국은 2017년이면 완전한 고령화 사회가 되고 복지도 확대 추세인데 성장 잠재력은 떨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최소한 매년 4%대 성장을 해야 우리가 치명적 결합상태로 가는 걸 막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수성이 어려워진다.”

-박근혜 정부가 치명적 결합상태를 극복할 방안은 구체적으로 뭔가
“제조업 중심인 2차산업에서 3차산업, 즉 지식기반사회로 구조변동이 일어나야 한다. 4·19 혁명이 왜 일어났나 하면 당시 한국은 농업사회였다. 제조업은 국민총생산(GNP)의 8%밖에 안 됐다. 대학생 18명 중 일자리를 얻는 사람이 한 명밖에 안 되던 시절이다. 그런 ‘실업폭탄’ 위에 이승만 정부의 부정부패가 쌓이니까 폭발하고 만 것이다. 한 해 뒤 터진 5·16은 쿠데타란 걸 부인할 순 없지만 1차 농업사회였던 한국을 산업사회(2차)로 바꾼 국가 구조혁명이었다. 그걸 이끈 게 박정희 리더십이다. 하지만 이 리더십도 25년 만인 1985년 수명을 다했다. 나는 20년 전인 김영삼 대통령 시절 ‘21세기위원회’를 하면서 ‘국가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시대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구조변동이라면 지금은 산업사회에서 3차 산업사회, 지식기반산업으로 가야 한다는 취지였다. 교육, 의료, 관광, 금융, 법률, 그리고 한류, 저널리즘, 패션 디자인 등에서 성장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얘기를 아무리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거야.”

-지금은 그 필요성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 2차산업에서 3차 지식기반사회로 어떻게 갈 수 있나.
“사실 지금은 4·19 때보다 더한 위기상황이다. 그때보다 대학 실업자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규제 철폐와 교육개혁이다. 이 두 가지가 우리 사회구조를 변동시켜줄 핵심 요소다. 규제 완화는 의료 한 가지만 예를 들자. 태국은 외국인 환자를 연간 200만 명, 싱가포르도 70만 명을 유치하는데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10만 명에 그친다. 외국인 환자 2명을 유치하면 승용차 1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다. 규제를 없애야 이게 가능하다. 둘째, 교육개혁은 한마디로 교육부가 없어져야 지식경제시대에 맞는 창의적인 교육이 가능하다. 일본의 대학 총장들이 ‘한국은 일제 잔재를 다 없애면서 왜 우리도 싫어하는 문부성을 따라 한 교육부는 그대로 두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우리는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온 사람도 중·고교 교사가 될 수 없다. 이런 고급 인력을 교사로 쓰면 교육이 개혁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교육을 여전히 산업화 프레임에 가둬 놓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나.
“여성이니까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야당을 잘 안아야 한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야당과 허니문을 성사시키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야당이 반대를 해도 현명한 반대를 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이끌어주고, 정기적으로 야당을 만나야 한다. 또 야당도 좀 더 국가를 생각하는 야당이 돼야 한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남북 간에 대치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북한이 핵을 가졌지만 어디에 쓰겠느냐? 북핵에 경계심과 경각심을 늦추지 않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남북이 정부를 따로 유지하되 물자와 사람, 정보와 자본의 이동을 자유롭게 해나가면 하부구조부터 통일이 이뤄진다. 그리고 북한에 식량을 줘야 한다. 그곳 주민들이 아사 상태다. 조선왕조가 왜 500년 넘게 오래갔나? 백성이 들고일어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을 저대로 놔두면 100년도 더 갈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즐거움이다. 『일리어드』에 보면 ‘죽어서 황제가 되는 것보다 살아서 노예가 되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죽는 건 바보다. 인생은 충분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대상이다. 나는 즐겁지 않은 생활은 하지 않는다. 등산하고, 글씨 쓰고. 책 읽고 공부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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