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본 2003년 한반도 정세] 통일연구원 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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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소용돌이 치는 북한 핵문제 때문에 2003년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는 쉽게 전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미 간의 핵 대치 국면도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고, 일본.중국.러시아는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행보를 서두르고 있다.

노무현(盧武鉉)당선자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 계승을 공언하고 있지만 취임 이전부터 외교안보와 남북문제에서 무거운 숙제를 떠안았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원장 서병철)이 만든 2003년 정세전망 보고서를 통해 북한 핵문제의 해결전망과 올 남북관계 및 한반도 정세를 진단해본다.

통일연구원이 23일 공개한 2003년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전망보고서의 화두(話頭)는 북한 핵문제다.

보고서는 "2003년 한반도 정세는 북한 핵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면서도 "미국의 북한 핵개발 프로그램 중단 요구와 북한 측의 체제안전보장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올 상반기 중 북.미 간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대화에 의한 핵문제 해결을 원하고, 미국도 대(對)이라크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 기간 내에는 북.미 간 대결이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통일연구원은 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간의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시점을 미국의 대 이라크전이 일단락될 2003년 하반기로 보고 있다.

그 구도는 북.미 간 물밑접촉이나 제3국의 중재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대신 미국이 북한체제를 보장하고 경제적 지원책을 마련하는 형태를 유력한 타협의 틀로 점치고 있다.

한반도 주변 정세는 북한 핵문제를 중심으로 미국은 물론 일본.중국.러시아가 미묘한 힘겨루기를 하는 등 요동칠 것으로 보고서는 전망하고 있다.

북핵 문제가 풀리지 않고서는 북.일 수교교섭 재개가 어려운 것은 물론 대북 경제지원도 제공될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연구원은 예상하고 있다.

연구원은 일본에 대해 "북.미 타협안이 마련될 경우 대북보상에 대한 역할분담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고 있다.

또 중국의 신지도부에 대해서는 실리주의적 대북정책에 입각한 핵포기 영향력의 적극적 행사를 기대한다.

핵문제와 북.미관계는 올 한 해 남북 당국 간 대화와 교류협력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게 연구원의 관측이다.

보고서는 북한이 올해 미국의 대북 강경책에 맞서고 협상국면을 창출하려 군사적 긴장수위를 높이려 들 것으로 우려한다. 핵동결 해제조치 심화와 함께 미사일의 재발사 실험을 강행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하지만 북.미 간 교착상태가 지속될 경우 남북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점을 우려하면서도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지 않는 이상 남북대화의 통로는 유지될 것으로 판단한다.

특기할 점은 남한 신정부의 출범과 북한 핵문제로 인한 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남북 정상회담의 추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대목이다.

"북한 핵문제의 타결 구도가 마련될 경우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방북 문제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그렇지만 지난해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해'란 슬로건으로 한.미 공조의 틈을 벌리는 데 성과를 거둔 북한은 소위 민족공조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통일연구원은 예상하고 있다. 핵문제로 인한 상황을 북.미 간이 아닌 남북한과 미국의 대결구도로 끌고 가자는 의도다.

여기서 남한이 한.미 공조에 치중할 경우 6.15 공동선언 위반임을 내세워 남북대화의 전면적인 중단을 선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의 순항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 올 한 해는 그 어느 때보다 '고난의 행군'을 해야하는 시기가 될 것으로 연구원은 전망했다. 가뜩이나 경제형편이 나쁜데 핵위기 때문에 경제문제보다 체제결속을 위한 사상사업과 이른바 선군(先軍)정치가 부쩍 강조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대북인식 악화로 인해 식량지원 등이 끊어지고 식량난이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는 지난해 7월 북한 당국이 취한 새로운 경제개혁 조치의 기본틀을 뒤흔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탈북자 문제 등 북한의 인권문제가 국제적인 이슈로 부상할 것이란 점과 이에 대응해 북한 당국이 국제인권기구 진출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영종 기자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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