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환영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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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존슨」 대통령의 장대한 환영을 보면서 6년 전 「아이크」가 이 땅을 방문했을 때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모 외지에서도 「존슨」 대통령의 환영 열이 「아이크」의 그때보다도 훨씬 상회한다고 논평했다. 「아이크」의 방한은 4·19직후 허정 과도정부 때의 일이었다. 행정력도 사회질서도 거의 공백에 가까운 상태.
사실 밀려드는 군중에 파묻혀 「아이크」의 일행은 남대문 앞에서 수10분 동안이나 갇혀 있어야만 했다. 국빈을 경호할만한 힘조차 없었고, 끝내는 행로를 바꿔 뒷골목으로 피해가야만 했었다. 무력과 무질서 속의 환영이었다.
수만의 국화송이나, 청사초롱을 든 미녀들의 도열이나 휘황찬란한 온갖 「데커레이션」도 없었다. 그러나 「존슨」 대통령보다 이 나라의 국민들이 「아이크」를 냉담하게 맞이했다고 할 수 있을까? 또 「존슨」 대통령의 환영이 그때보다 훨씬 멋지고 훌륭한 것이었다고만 단정할 수 있을까?
무질서했다고는 하지만, 「아이크」의 환영은 그만큼 자연발생적이었다. 미리 계획된 질서정연한 환영보다도, 때로는 진정이 그냥 흘러나온 조잡한 환영이 한층 더 자연스럽고 흐뭇할 경우가 많다.
이번에 베푼 「존슨」 대통령의 성대한 환영은 현 정부의 강력한 행정력이나 기틀이 잡힌 사회질서의 힘을 과시했다고도 볼 수 있다.
빈틈없이 짜여졌고 모든 격식이 틀에 잡혀 있다.
어떤 환영방식이 더 좋고 옳으냐하는 것보다도 다만 우리가 명심해 두어야할 것은 환영은 외형의 질서로써만 다해진다는 것이 아니라 점이다.
「아이크」의 환영이 「존슨」 때보다 초라했다고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무질서했다해서 환영 열이 반드시 뒤떨어져 있었다고 논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편이 질박하고 꾸밈없는 환영심을 자연스럽게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환영방식은 때로는 어설픈 것이 있는 편이 자연발생적 축전기분을 돋울 때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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