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민 ‘상경 재판’ 언제까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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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평택시에 사는 최모(58)씨는 2010년 7월 민사소송에 휘말렸다. 할아버지가 남긴 땅 문제를 놓고 친척들과 다툼이 생긴 것이다.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에서 진행된 1심에선 최씨가 일부 패소했다. 납득할 수 없었던 그는 곧 항소했고 고생문도 함께 열렸다. 항소심이 서울 서초동에 있는 서울고법에서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 서울에서 새 변호사부터 찾아야 했다. 평택에서 서울고법까지 다니겠다고 나서는 변호사가 없었다. 여기에 재판 출석과 원고·피고 간 조정 과정 등을 거치느라 그는 왕복 5시간이 넘는 거리를 수십 차례 오갔다. 그러는 동안 농사일과 집안일은 모두 팽개쳐야 했다. 최씨는 “왜 경기도 사람이 서울까지 가서 재판을 받아야 하느냐”고 푸념했다.

 경기도민들은 항소심 재판을 받으려면 서울로 원정을 가야 한다. 고등법원이 없기 때문이다.

 고등법원은 1심인 지방법원 합의부의 판결에 대한 항소 사건, 지방법원 합의부의 결정·명령에 대한 항고 사건, 선거 소송 사건 등을 심판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경기도에는 고등법원은 물론 항소심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원외재판부도 없다.

 여기다 경기도를 담당하는 서울고법은 인천·강원도까지 관할한다.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서울고법에 2011년 한 해 접수된 항소심 사건은 모두 3만7219건이었다. 부산·광주·대구·대전 등 다른 지역 고법에 접수된 사건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특히 서울고법에 접수된 항소 사건 중 수원지방법원에서 이송된 사건은 19.2%로 서울을 제외한 관할구역 내 지방법원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정원 수원지법 공보판사는 “경기도의 범위가 넓은 데다 서울고법의 과부하 문제 등으로 인해 경기도에 고등법원이 설치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했다.

 경기고법을 유치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2010년에는 경기고법 유치 범도민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지난달 6일 대통령직인수위에 광교신도시의 법조타운에 경기고법을 설치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또 수원 광교신도시 내 경기도청 신청사 부지 중 일부나 공공기관 이전 부지 등을 고등법원 부지로 내놓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와 법무부는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경기고법 설치에 관한 법률이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기 때문이다. 17대 국회인 2007년부터 도내 국회의원들이 고법 설치 관련 법개정을 계속 추진했지만 임기 만료 등으로 법안이 폐기되는 등 성사되지 못했다. 이에 경기고법 유치 범도민추진위원회는 2011년 8월 29일 헌재에 경기고법 설치와 관련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지만 아직까지 심리 중에 있다.

 장성근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인구 1250만 명의 경기도에 고법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수원에 경기고법이 설치되면 도민들의 민원 해소는 물론 지역 균형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대법원도 경기고법 설치에 대한 타당성 여부를 연구·검토하고 있다”며 “법 개정안의 통과에 따라 고법 설치도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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