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닫게 하겠다" 공무원 32명, '마트 습격'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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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홈플러스 울산동구점에서 구청 직원 30여 명이 원산지 표시 여부 등 에 대한 합동점검을 하고 있다. 동구청은 방어동에 홈플러스익스프레스가 기습 개점한 것과 관련해 이날 점검을 실시했다. [뉴시스]
김종훈

울산시 일산동의 홈플러스 울산동구점에 지난달 28일 오전 11시50분 구청장과 공무원 32명이 들이닥쳤다. 김종훈(49·통합진보당) 동구청장이 직접 앞장을 섰다. 김 구청장은 공무원들에게 “이 마트가 법을 어긴 내용을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말고 모조리 찾아오라”고 지시했다. 곧이어 공무원들이 점검사항이 적힌 표를 들고 매장 안을 샅샅이 훑었다.

 식품위생 담당 공무원은 튀김과 김밥을 2~3개씩 수거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검사를 의뢰했다. 소방서 직원 2명은 화재 비상대피로가 규정대로 확보돼 있는지를 살폈다.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 회원 2명은 위조상표가 부착된 짝퉁이 있는지 찾아다녔다. 한 시간 반에 걸친 합동점검 결과 12건의 위반사항이 나왔다.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두부가 식품매장에 진열되어 있었고 ▶상표법 위반 혐의가 있는 짝퉁 의류를 판매했으며 ▶가스누출경보기가 고장 나 있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동구청은 4일 유통기한을 넘긴 두부를 문제 삼아 영업정지 일주일을 통보했다. 나머지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시정권고·보완명령을 내리는 수준에 그쳤다.

 이날의 단속은 여러 면에서 이례적이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행정기관의 매장 점검은 위생·건축·소방 등 분야별로 실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점검인원도 2명 정도다. 구청장이 현장에 나오는 일은 매우 드물다. 단속을 당한 홈플러스 측이 ‘표적 단속’이라고 반발하는 이유다. 울산 동구청이 그런 반발을 감수하면서 합동단속을 실시한 데는 이유가 있다. 단속 사흘 전인 25일 동구 관내에 기업형수퍼마켓(SSM)인 홈플러스익스프레스 방어점이 개점했기 때문이다. 김 구청장은 기자회견에서 “SSM이 인근 주민, 구청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고 기습 출점하는 일이 벌어졌다. 중소상인들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강력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관련 공무원에게선 “행정력을 총동원해 SSM 문을 닫게 만들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고선 모기업 격인 홈플러스 매장에 대한 합동점검에 나선 것이다.

 홈플러스 동구점은 조만간 문제가 된 식품매장의 영업을 일주일 동안 정지하거나 이에 상응하는 과징금을 납부해야 한다. 행정기관이 법규에 따라 내린 결정인 만큼 따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간부는 “30명이 넘는 공무원이 일제 점검을 하면 털어 먼지 안 날 매장이 어디 있겠느냐”며 “SSM 출점 때문에 보복성 점검을 당한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중소상인과 소비자·주민의 여론은 엇갈린다. 중소상인단체 회원들은 홈플러스익스프레스 방어점 건너편 도로에 천막을 치고 영업중단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영업을 방해하기 위해 매장 앞 인도에 냉동탑차 등 차량 5대를 세워놓기도 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주부 이명순(52)씨는 “대형마트가 생기면 인근 주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무조건 반대할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울산지역에서 진보성향 구청장과 대형마트 영업권을 둘러싼 갈등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통합진보당 소속 윤종오(50) 울산 북구청장은 대형마트인 코스트코가 관내인 진장동에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고 버텼다. 검찰은 지난해 6월 윤 구청장을 직권남용 및 권리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울산지법은 윤 구청장에 대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한편 홈플러스는 울산지역에 SSM을 더 개점할 예정이어서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차상은 기자

◆ 울산 홈플러스 동구점에 무슨 일이

2월 25일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울산 동구 방어점 개점

2월 26일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기자회견 통해 “SSM 기습 출점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경고

2월 28일 울산 동구청장 및 공무원 32명 홈플러스 울산동구점 합동점검, 유통기한 하루 지난 두부 등 12건 적발

3월 4일 울산 동구청, 홈플러스 측에 영업정지 7일 또는 과징금 사전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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