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엔화 약세, 경제마찰 우려

중앙일보

입력

엔화 약세가 다시 가속되고 있다. 연초에 달러당 1백31엔대였던 엔화 가치는 최근 들어 달러당 1백33엔대까지 내려섰다.

반면 원화는 엔화의 하락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상대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다. 원화의 대(對)엔 환율은 올들어 1백엔당 1천원선이 깨지더니 최근에는 1백엔당 9백90원선도 무너졌다. 지난해 연간 평균 엔화 환율(1백엔당 1천60원)에 비해 원화 가치가 벌써 6% 이상 오른 셈이니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국내 기업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근래 일본 경제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부진한 만큼 엔화 가치의 하락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방향과 속도다. 9.11 테러 사태 직후만 해도 달러당 1백15엔대였던 엔화 가치는 불과 석달 보름 남짓 만에 15% 이상 떨어졌다. 그 동안 일본 언론은 "엔화가 고평가돼 있다"는 정책 당국자들의 발언을 중계하듯 보도했다.

우리는 이같은 엔화 약세 흐름에 일본 당국의 정책적 의도가 개재돼 있지 않나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환율로 수출을 늘려 경제를 살려 보자는 발상이 작용했다면 그거야말로 우려할 만한 일이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일본 제품의 가격이 싸져 잠시 효과를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수입 물가가 오르고, 수출에 맛을 들인 기업.금융기관들의 구조조정 의지는 흐트러져 경제에 거품이 이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더욱이 엔화만의 하락을 묵과할 수 없는 주변국들, 예컨대 중국 등이 다투어 통화가치 하락에 나서는 '환율 전쟁'이 발생한다면 경제 마찰이 각 분야로 확대될 것이다. 일본 외환당국은 "통화가치를 낮춰 번영한 나라는 없다"는 하야미 마사루 일본은행 총재의 발언을 신뢰할 수 있도록 아시아 여러 나라의 경제 사정을 고려한 환율 정책을 다듬어 가야 한다.

우리 정부도 엔화 약세로 인한 원화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막고 중국과 공조 체제를 갖추는 등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국내 기업 역시 일본 상품과 경쟁해 이길 수 있도록 원가 절감과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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