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떨어진 돈가치…국민들 고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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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돈가치가 떨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4년전 외환위기 때 우리도 겪은 일이지만 요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페소화 가치 하락으로 인해 당하는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 11년 동안 유지돼온 고정환율제가 사라지면서 페소화 가치는 한꺼번에 40% 이상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 약 못구해 의료대란=시민들이 약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앞으로 약값이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한 도매상들이 병원과 약국에 약품 공급을 꺼리고 있는 탓이다. 일부 병원에서는 1회용 수술장갑을 못구해 계획했던 수술을 연기할 정도다.

팔 약이 떨어져 아예 문을 닫는 약국도 나타나고 있다. 약품과 의료기기는 대부분 수입품이어서 환율 변동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당뇨병 학회장인 네스토르 로레토는 "도매상들의 장삿속으로 인해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이 매우 부족한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에두아르도 두알데 대통령은 최근 브라질에 긴급 약품지원을 호소했다. 브라질 보건부는 인슐린과 에이즈 치료제 등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두알데 대통령은 이어 제약업계 대표들을 만나 의약품 가격안정에 협조해 달라고도 당부했다.

◇ 가전제품도 품귀=수입 가전제품 거래도 거의 거의 중단됐다. 상인들은 달러를 주고 사온 물건을 페소로 받고 팔았다가 페소화 가치가 떨어지면 큰 손해를 볼 것이라며 물건을 내놓지 않고 있다.

수입상들은 도매상이나 소매상에게 물건을 팔 때 달러 현찰을 요구하거나 페소화로 결제할 땐 상당한 웃돈을 요구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수입상들도 재고가 바닥나 가고 있으나 물건을 더 이상 수입해 오기 어렵다는 점이다. 달러가 없기 때문이다.

◇ 암달러 거래 활기=불과 몇달전만 해도 아르헨티나엔 암달러 시장이라는 게 없었다. 아무 은행에나 페소화를 들고 가면 그만큼의 달러화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암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물론 여기서 달러화는 강세다. 일단 무역거래시 적용되는 환율이 달러당 1.4페소로 정해짐에 따라 앞으로 시장환율은 이보다 더 높아질 것이 뻔하다. 이에 따라 시간이 급한 사람들은 1.9페소를 주고 1달러를 사는 것으로 전해진다.

◇ 해외 여행 급감=항공사들도 달러를 주지 않으면 비행기표를 잘 팔지 않는다. 공항내 은행 지점들은 얼마전까지 비행기표를 가진 사람에게 1인당 5백달러까지 환전해 줬지만 이제는 그것도 중단한 상태다.

신용카드도 아르헨티나 은행이 발행한 것은 해외에서 기피대상이다. 비자 아르헨티나의 루이스 슈비메르 사장은 "공식적으로는 해외 사용에 전혀 지장이 없다"면서도 "브라질.우루과이 등지의 일부 상점에서는 규정을 어기고 아르헨티나의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상당수 여행사들은 고객에게 선금을 받고도 호텔숙박비 등이 송금이 안돼 계약을 취소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주정완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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