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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강진군의 문화회관(데이비드·스타인버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남을 돕는다는 직업은 결코 쉬운 직업이 아니다. 이 직업은 항상 「페이소스」로 가득차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불행한 이웃을 도울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인간의 비극은 어디나 있기때문이다. 작게는 개개인을 돕고 공공건물이 설립되는 것을 도움으로써 이것이 한국의 장래에 이바지될수 있다.
남을 돕는 일이 어렵고 애틋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이룩되어 어려운 사람들이 뭔가 도움을 받았을 때 돕는 사람은 천진스런 즐거움을 맛볼수 있다.
언젠가 부산에 내려갔을때 나는 우연히 신임강진군수를 만나보게 되었다. 그자리에서 우리는 농촌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문제들에 관해의견을 나누었다.
내가 강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그곳이 고려시대에 유명한 도자기도요지였다는 것과 이조시대에는 정다산이 유배되었던 곳이었다는 것.
후에 나는 강진을 방문했다. 마을사람들과 만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 나는 이 마을의 교육열과 생활의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정부가 낡은 병원을 종합병원으로 개조하는데 협주해준다는 조건으로 이곳에 문화회관을 건립하는데 기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 조건은 광장히 좋은 반응을 받았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 협조하여 상당수의 돈을 모았으며 군과 도당국도 적극 협조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알기도전에 이미 문화회관은 착공을 서두르고 있었다.
개월후 나는 아내(소프라노 이명숙씨)와 함께 문화회관 개소식에 참석하기 위해 강진으로 내려갔다. 서울대학교음악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아내와 처제가 이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고전음악의 자선음악회를 열었다.
우리가 이곳까지 오기에는 고생이 매우 심했었다. 그때는 전국에 눈보라치는 혹한이 계속되고 있었으므로 비행기가 뜨지못해 우리는 열두시간을 기차에 시달리며 순천에 도착하자마자 한밤중에 다시 「트럭」을 타고 몇개의 산을 넘고 나서야 새벽2시쯤 강진에 도착했었다.
참으로 힘든 여행이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의 환대는 우리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주었다. 이때 내가 받은 감명은 한국에온 이래 처음 느끼는 뜨거운것이었다.
그후 나는 이따금씩 강진에 들렀다. 그곳에 갈때마다 그 회관이 마을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본다.
언젠가는 그곳의 한 농부와 만나 간소한 식사를 대접받으며 엉터리 한국어로 얘기를 나누어다.
그때 그 농부는 내가 그 회관건립을 도운 사람이란 사실을 알고 무척 기뻐했다. 그 기뻐하는 모섭을 보고 나는 문득 한국사회의 일원이 된 듯 느끼게 되었다.
나는 요즈음도 똑같은 목적으로 다른 지방을 방문하고 있는데 역시 문화회관이나 조그만 도서실같은 것은 시골에서도 절실히 필요로하고 있으믈 알게되었다.
필자=「아시아」재단한구지부대표. 「소프라노」이명숙여사의 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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