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형님, 쓴소리 마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고정애
논설위원

“형님, 쓴소리하지 마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A의원이 몇 년 전 들은 말이다. 조언을 해 준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필했던 B의원이다. B의원의 논리는 이랬다.

 “내가 대통령을 옆에서 쭉 지켜보니 ‘나는 쓴소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디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들 한다고 보면 돼요. 대통령 입장에선 듣고 또 듣는 거지요. 그게 쌓이고 쌓여 말만 나오면 (대통령이) 거부반응을 보일 정도가 됩니다. 결국 용기를 가지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을 싫어하게 되더라는 겁니다.”

 두 사람은 여야로 소속은 달랐지만 막역한 사이였다. B의원 입장에선 나름 비방(秘方)을 전수해 준 거였다. A의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승승장구한 편이었다. 그에게 어제 물었다.

 -조언이 도움이 됐나.

 “재수한 사람들끼리 말을 트는 경우도, 높이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 대통령과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하다.”

 -쓴소리를 많이 했다는 말인가.

 “나야 많이 했지. 그래도 어느 순간까지 싸울지, 어느 수준까지 진언할지 잘 모르겠더라.”

 진언? 윗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는 의미의 진언(進言)인지, 생각한 바를 거리낌 없이 다 쏟아 놓는 진언(盡言)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되물을 필요는 없었다. “직언이나 충언은 성공할 수 없겠더라. 그건 혼자 내뱉고 치우는 거지”란 다음 말 때문이었다.

 청와대 수석 출신인 C가 전한 일화도 유사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전 장관의 사퇴 당시였다. “대통령과 독회(讀會) 중 한 수석이 들어와 ‘점심 자리에서 얘기 들어보니 유 장관이 물러나야겠더라’고 큰 목소리로 말하곤 별 설득 없이 그냥 나가 버리더라. 나는 따로 뵙고 같은 결론이었지만 과거 사례를 곁들여 ‘지금 조치를 안 하면 주말 지난 뒤 떼밀려 물러나는 모양새가 됩니다’고 했다. 대통령을 설득하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역대 대통령에게 쓴소리가 부족한 게 아니었다. 언론도 민심도 열심히 목소리를 내니 말이다. 요체는 이왕 할 바엔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거였다. 대통령과 가깝고 그래서 명운을 함께할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1300여 년 전 누군가처럼 감히 간언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능히 간언하고 훌륭히 간언해야 할 경지까지 가야 한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 주변도 같은 숙제를 안고 있을까? 인지상정이니 그럴 거다. 다만 고민의 지점이 ‘감히 간언’에도 못 미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보고하는 것도 어려워한다는 얘기가 일관되게 들려서다.

 2007년 한나라당의 경선 룰 분쟁 때의 일이다. 강재섭 당시 대표 측에서 이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의 대리인들에게 의견을 주면 이 전 대통령 측은 당일 오후 답신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 쪽은 사흘 지나야 했다. 당시 상황을 아는 인사는 “보고를 못해서였다. 대리인을 정치원로로 바꾸니 이튿날로 당겨지더라”고 했다.

 요즘도 다르지 않다. 박 대통령과 일한 고위직이 지인으로부터 “계속 대통령과 일하셔야죠?”란 질문을 받곤 고개를 절레절레 내두르며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보고를 받다가 마음에 안 들면 (박 대통령이) 쳐다보는 때가 있는데 그때는 오금이 저린다. 무서워서 못한다.”

 하기야 박 대통령의 ‘레이저 눈빛’은 유명하다. “그게 아니잖아요?” “이러시면 저와 일 같이 못하지요” “그래서 큰일 하시겠어요?”란 일련의 힐난조도 말문을 막곤 한다. 여기에 ‘한 번 찍히면 회복 불능’이란 걸 입증하는 참모 변천사까지 더해진 형국이다. 박 대통령과 가깝다는 사람일수록 정작 대통령 앞에선 아무 말도 못한다지 않은가. 민간인(교수)도 “왜 다들 대통령 앞에서 죽을 쑤나 했는데 나도 ‘이건 꼭 얘기해야지’ 결심하고 가도 (박 대통령 앞에서) 묘하게 말할 수 없었다”고 토로할 정도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런 분위기가 대통령직 수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곧 알게 될 것이다.

고 정 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