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12) 칼국수·설렁탕 오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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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정기적으로 만나 점심을 먹는다. ‘주례 오찬’이라고 부른다. 법에도, 어느 훈령에도 나와 있지 않는 비공식적인 자리다. 하지만 굵직굵직한 정책 현안이 여기서 판가름 나기도 한다. 지난번 다룬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지금의 국가정책조정회의)도 주례 오찬 자리에서 탄생했다. 물론 직분을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총리나 대통령이나 외롭고 힘든 자리이긴 마찬가지 아닌가.

 총리를 두 번 하며 김영삼·노무현 전 대통령과 여러 번 주례 오찬을 했다. 난 누구의 가신(家臣)이 돼 본 적이 없다. 누구를 나의 가신으로 만들어본 적도 없다. YS(김영삼 전 대통령)나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신이었다면 그들의 집을 드나들며 식사하고 만났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총리로 일하면서도 사적인 자리를 따로 만들어 대통령과 회동하거나 한 적은 없다. 그렇다 보니 이 주례 오찬이 가장 지근(至近)에서 대통령을 접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 기억을 잠시 더듬어 본다.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먹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왼쪽)과 손명순 여사.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2월 27일 취임하고 처음 연 국무회의에서 “앞으로 청와대 식사는 칼국수나 설렁탕으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중앙포토]

 노 대통령은 가리는 음식이 별로 없어 보였다. 대부분 약식 한정식이 나왔다. 샐러드, 전, 나물에 탕, 밥까지 순서대로 나오는 형식이었다. 언제나 청와대 문희상 비서실장과 이정우 정책실장을 데리고 나왔다. 나도 이영탁 국무조정실장과 함께 갔다. 둘만 점심을 하는 일은 없었다. 비공식 오찬이라고 하지만 반은 공식적인 분위기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달랐다. 늘 독대(獨對)였다. 김 대통령은 언제나 나를 볼 때면 가장 먼저 “춘부장 안녕하시지”하고 따뜻한 말투로 물었다. 선친(고형곤)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김 대통령이 철학과를 다닐 때 아버지가 교수였다고 한다. 김 대통령 본인을 둘러싼 학력 논란이 신경 쓰였는지 늘 자신과 내 아버지와의 관계를 강조하곤 했다. 한 번은 김 대통령이 아버지와 안호상 박사 등 은사들을 청와대에 초대해 오찬을 대접한 일이 있다. 아버지는 면을 못 드셨다. 그런데 그날도 칼국수가 식탁에 올랐나 보다. 다녀온 아버지에게 “어떠셨느냐”고 물었더니 “굶고 왔다”고 답을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정권 초기에는 칼국수가 주로 나왔다고 하는데 난 정부 말기 총리였다. 주례 오찬이면 항상 설렁탕 상차림이었다. 찬은 간소했다. 설렁탕과 밥, 깍두기. 그게 전부였다.

 김 대통령은 식사가 나오자마자 바로 공기를 뒤집어 들고는 설렁탕 그릇에 ‘툭’ 하니 밥을 부었다. 그러곤 깍두기 국물을 조금 넣고 휘휘 젓고 나선 들기 시작했다. 어찌나 속식(速食)이던지. 총리가 이런저런 일을 보고라도 해야 하는데 겨를이 없었다. 식사 속도를 따라가느라고 분주히 숟가락을 들어도 내가 밥공기를 채 반도 비우기 전 김 대통령은 식사를 마치곤 했다. 그럼 김 대통령 앞으로 과일이 들어왔다. 그제야 얘기를 나눌 여유가 생겼다.

 한 번은 김 대통령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드십니까.”

 그러자 김 대통령은 학생 때 일을 풀어놨다.

 “내가 하숙할 때 여러 명이랑 함께 살았어요. 밥상에 전부 둘러앉아서 먹는데 국은 한가운데 큰 그릇에 하나만 있고 각자 앞에 밥공기가 하나씩 놓여 있는 거예요. 국물을 한 숟가락이라도 빨리 많이 먹어야 이기는 거야. 그때 경쟁하다가 속식이 됐어요.”

1997년 8월 26일 신한국당 당사에서 만나 악수하는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왼쪽)와 이회창 대선 후보 겸 당 대표. 한 달여 전인 7월 21일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는 이회창 후보와 맞붙어 패배했다. [중앙포토]

 거제에서 귀하게 자란 인물이겠거니 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다.

 단둘만 보는 자리다 보니 비공식적인 대화가 많이 오갔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김 대통령이 고민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질문했다.

 “아, 요새 상황이 복잡한데….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이회창과 이인제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분명하게 답했다. “대선에서 엄정 중립의 원칙을 지키십시오.”

 내 조언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김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나름의 중립을 지킨 것으로 안다. 결국 15대 대통령 당선인 자리는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에게 돌아갔지만.

 물론 김영삼 대통령과 주례 오찬에서 정책 얘기를 더 많이 나눴다. 한 번은 “수능과 관련해 사교육 문제가 심각하다”며 대책을 주문했다. 그의 말을 듣고 와서 당시 안병영 교육부 장관과 함께 EBS 수능 위성방송 정책을 만들어 시행하기도 했었다.

 노 대통령과도 비공식적인 식사 자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4년 1월 25일 일요일, 노 대통령이 “등산을 가자”고 했다. 내외간에 함께하는 등산으로 권양숙 여사도 같이했다. 나와 국무위원, 청와대 수석비서관 30여 명이 함께 숙정문을 거쳐 산을 오르고 군부대도 들렀다. 평창동으로 내려와 갈비 집에서 식사를 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제3당 자리에 머물고 있는 때였다. 마냥 웃고 즐길 시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가 잠시 고민을 잊었던 것 같다. 거기서 내가 소주 칵테일을 만들어 돌렸고 분위기가 매우 흥겨웠던 기억이 난다.

정리=조현숙 기자

◆ 이야기 속 지식

15대 대선

15대 대통령을 뽑으려고 1997년 12월 18일 치른 선거. 한나라당의 이회창,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국민신당의 이인제, 국민승리21의 권영길 등 7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김대중 후보가 1032만6275표(득표율 40.3%)를 얻어 당선됐다. 이회창 후보는 993만5718표(38.7%), 이인제 후보는 492만5591표(19.2%)로 2·3위에 머물며 낙선했다. 이인제 후보는 신한국당(이후 한나라당) 소속이었으나 이회창 후보와의 경선에서 탈락하자 탈당했고, 국민신당을 만들어 출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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