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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카드 범죄 … 금융권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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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당신의 신용카드 정보가 줄줄 새고 있다-.

개인신상과 비밀번호 등 카드 정보가 몰래 거래되면서 피해가 잇따르고 있으며, 식당이나 주유소에서 무심코 건네준 카드가 자신도 모르게 감쪽같이 복제돼 범행에 이용되기도 한다.

최근 일어난 농협 현금카드 정보유출 사건 역시 개인정보 보안과 카드 복제 방지 대책이 허술한 데 따른 결과다.

전문가들은 카드 복제 등을 막을 근본적인 대책은 없다면서, 카드 소지자 개인의 각별한 주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카드 정보 유출=경기도 의왕시에 사는 임모(30)씨는 지난해 9월 H회원제 카드회사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콘도나 호텔을 싸게 이용할 수 있는 할인카드에 가입하라는 내용이었다. 솔깃해진 임씨는 가입하기로 하고 신상 등을 알려줬다.

그러나 H사는 곧 부도가 났고 이 회사 직원 정모(40)씨 등은 임씨를 비롯한 회원 3백50명의 신용카드 번호와 비밀번호를 1천2백만원을 받고 徐모(24)씨에게 넘겼다.

徐씨는 미리 개설해둔 인터넷 쇼핑사이트에 임씨 등의 카드 정보를 입력하고 이들에게 물건을 판 것처럼 꾸며 모두 15억5천9백만원의 판매 대금을 챙겼다.

22일 경찰에 구속된 徐씨 등은 이밖에 지난해 10월 태국 방콕에서 위조된 신용카드 1백20여장을 장당 1백만원씩에 사들인 뒤 카드할인 등으로 10억여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위조카드는 방콕의 한국식당에서 손님이 요금 결제를 위해 종업원에게 건네준 카드가 손님 몰래 즉석에서 복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경찰에 붙잡힌 李모(34)씨 등은 여자들이 주로 핸드백에 신용카드를 보관한다는 점에 착안해 카드 정보를 빼냈다.

생활정보지에 여직원 구인광고를 낸 뒤 지원자들이 면접하는 동안 맡겨둔 핸드백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복제했다. 비밀번호는 가입자에게 전화로 '사은행사에 당첨됐는데 본인 확인이 필요하다'고 물어 알아냈다.

◇복제장치 유통=신용카드 복제를 위해선 신용카드 판독기(reader)와 입력기(writer)가 필요하다. 판독기는 신용카드의 자기 띠에 저장된 정보를 읽어들이고, 입력기는 읽어들인 정보를 새로운 신용카드에 저장하는 장치다.

신용카드 범죄를 전담해온 서울 중부경찰서 강력2반 박철수 반장은 "청계천이나 용산 전자상가에서 2백만원 미만의 가격에 카드 복제장치가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지만 이를 막을 법적 규제 장치가 없다"고 말했다.

◇위조방지 장치 부실=농협 등 일부 은행카드와 중소기업에서 발행하는 할인카드 등은 복제가 너무 쉽다. 대부분의 은행카드는 복잡한 검증 암호가 숨겨져 있기 때문에 카드 실물이 없다면 무단 복제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된 농협카드는 계좌번호.비밀번호 등 기본 정보만 알면 복제가 가능할 정도로 허술하게 관리돼 왔다. 1991년에 만들어진 카드 체계를 그대로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협이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암호를 추가한 새 카드로 교체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사고가 20여건이나 터진 뒤였다.

원낙연 기자yan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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