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토크쇼]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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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중국 베이징(北京) 대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노장(老莊) 철학 전문가 최진석(서강대.43) 교수가 『노자(老子) 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소나무, 1만5천원) 을 펴냈다.

올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의 『노자와 21세기』(통나무) 이후 전문가가 풀어쓴 가장 주목할 만한 도덕경(道德經) 해설서로 판단된다. 소장 철학자다운 패기가 물씬 풍기는 이 책에서 최교수는 "노자의 원래 의도가 무엇인지 그 원음(原音) 을 확인해 보자"고 제안한다.

노자에 대한 '주석가들의 도덕경'이 아닌 '노자의 도덕경'을 재구성하려는 원력을 담고 있는 것이다. 노자 당시의 역사적 사료를 토대로 최교수는 공자와 노자의 이념적 대립구도를 부각시키며 노자가 구상한 새로운 문명의 모습을 복원해 낸다.

-김용옥 교수의 동양 고전 해석에 대해 논란이 한창일 무렵 정작 학계에서는 소극적이었다. 이에 반해 최교수는 논란이 본격화되기 전인 지난해 가을 이미 『노자와 21세기』에 대해 비판적 서평을 계간지 『오늘의 동양사상』(예문서원) 에 게재한 바 있다.

***한국인 北京大박사 1호

"사실 그 글을 쓰면서 학술적인 논쟁이 야기될 줄 알았다. 그러나 별로 주의를 받지 못했고, 그 뒤의 논쟁은 매우 수선스러워져 버렸다. 김용옥 교수는 전통적인 노자 해석의 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잘 종합해냈다. 또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했다."

-당시 주로 어떤 점을 비판했나.

"김용옥 교수가 노자를 반문명론자.반교육자 정도로 해석하는 아쉬움을 지적했다.예를 들면 도덕경 제2장에서는 노자를 가치 상대론자로 해석하고, 제12장에서는 문명의 과잉을 경고하는 사람 정도로 해석하는데, 나와는 다른 관점이다."

-최교수는 책에서 노자보다 7백년 후배인 왕필도 노자를 곡해했다고 했는데 노자보다 2천7백년 후배인 최교수가 노자의 원음을 더 잘 재구성했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우선 노자의 원음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점만으로도 다른 해설서와는 다르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의 시각에서 잡힌 노자만 부각시켰지, 노자 당시의 시대 의식은 무엇이었는지, 노자가 이념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

노자와 시대적으로 근접한 백서본(帛書本) 과 죽간본(竹簡本) 을 주의 깊게 살펴 보면 희미하게나마 노자의 음성이 들린다."

-노자는 1차적 서술자다. 이미 고전이 된 노자에 대한 수많은 2차적 해석서의 우열을 판가름할 기준은 무엇인가.

"2차적 해설서의 우열은 판가름할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2차적 해설자의 대표격인 하상공.왕필, 그리고 성현영 등은 모두 자신의 주장을 펴기 위해 나름대로의 기획된 의도를 노자를 통해 전개했다.

또 각각 자신들의 시대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을 높은 학문적 완성도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주의할 점은 해설자의 음성이 훨씬 더 많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7백여년의 시간적 거리가 있는 노자와 왕필의 문제의식과 해결책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최교수의 책을 보면 노자철학의 핵심 개념인 도(道) 에 대한 해석이 매우 독창적이다. 특히 무(無) 와 유(有) 를 가지고 도를 설명하는 대목이 압권으로 보인다.

"독창적인 해석이라기보다는 노자가 그렇게 보았다. 그 동안에 노자의 도(道) 를 본체나 실체로 본 것은 근대 서양철학이나 중국의 한대(漢代) 혹은 위.진(魏.晉) 시대의 철학적 영향 때문이다. 노자가 살던 중국의 고대에는 두 범주 사이의 관계로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낯설지 않았다.

주역의 저자가 음과 양의 관계로 세계를 읽었듯이 노자는 무와 유의 관계로 세계를 읽고 있다."

-노자가 말한 도를 흔히 인간과 우주의 본질 혹은 실체로 보는 기존의 관점과 다른데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노자의 도는 세계와 만물이 대립적이고 상대적인 두 요소간에 서로 의존해 있는 모습을 개괄하는 범주다. 노자는 이 세계가 무와 유의 관계로 되어 있음을 도라는 범주로 기호화하고 있을 뿐이다.

실체라면 대개 그 실체를 규정하는 본질 내지 속성이 있다. 노자의 도가 최고의 범주임에는 분명하나 도덕경 어디에도 도의 특정한 본질이 설명돼 있지 않다. 그것은 노자 자신이 도를 실체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교수는 공자와 노자를 대립적으로 놓고 사유를 전개한다. 공자와 노자의 도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공자가 틀렸다는 말인가.

"공자는 전혀 틀리지 않았고, 공자의 후학들이 스승의 도를 잘못 적용한 것도 아니다. 공자와 노자는 서로 구상이 달랐고, 세계를 읽는 눈이 달랐을 뿐이다. 공자가 기대려고 한 도는 인도(人道) 였기 때문에 전통과 체계성을 중시했다.

반면에 노자가 기대려고 한 도는 천도(天道) 였기 때문에 자연성과 비체계성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노자 당대시각으로 보자

-노자가 허무주의자도 아니고 반문명론자도 아니라면 노자가 구상한 문명과 인간의 모습은 궁극적으로 어떤 것인가.

"노자가 구상한 문명의 철학적 성격은 비본질주의적이고, 정치적으로는 권력분산적이다. 노자는 다양성이 보장되고 특정한 체계가 권력으로 행사되지 않는 그런 문명을 지향했다.

공자에게서 바람직한 통치자가 전통적으로 확립된 인위적 체계를 잘 적용하는 사람이라면, 노자에게서 이는 자연의 존재 형식과 운행 원칙을 모델로 하여 통치함을 말한다."

-노자의 시대와 오늘을 비교할 때 우리가 노자철학에서 얻을 시사점은 무엇인가.

"흔히 지금의 시대를 패러다임의 전환기라고 한다. 즉 집중보다는 분산으로, 추상적 이상보다는 구체적 삶으로, 중앙집권보다는 분산으로, 동일성의 통일보다는 차이성의 공존으로, 단일성보다는 다양성으로, 소품종 대량생산보다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전환돼 가는데, 이런 경향은 노자의 주장과 아주 닮아 있다."

-고난에 처한 사람이 노자를 보고 힘을 얻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1차 서술자인 노자가 애초에 구상한 문명적 구상이 무엇이었건 간에 고전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인정한다. 그러나 고전 저술가의 원음을 추적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임도 분명하다. 독자가 1차 서술자와의 거리를 최대한 좁혔을 때라야, 그 고전으로부터 진정한 힘을 부여받을 수 있다."

-국내서적으로는 김형효(정신문화연구원) 교수의 『데리다와 노장의 독법』과 김용옥 교수의 『노자와 21세기』만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럴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가 보기에 두 책이 지금까지 나온 노자 해석서 가운데 가장 참고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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